[브릿지 칼럼] 노후준비 최적기 '50대'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일 2020-09-21 14:54 수정일 2021-06-12 01:39 발행일 2020-09-2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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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노후준비는 영원한 숙제다. 닥쳐온 파도에 휩쓸리듯 은퇴생활에 직면하는 게 보통이나, 적어도 사전준비의 필요성과 중압감은 생애전체에 걸친다. 해결할 필수과제인데 녹록찮으니 갈수록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조기은퇴라는 버킷리스트를 위해 젊었을 때부터 대응준비에 나서지만, 일반적이진 않다. 되레 환갑이 지나서도 뾰족한 미래계획 없이 하루하루 호구지책에 휘둘리는 게 보편적이다. 그만큼 삶은 무겁고 밥은 급하다. 정작 ‘노후(老後)’가 됐을 때야 비로소 만시지탄을 품는다.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일단 시점을 놓쳤다는 게 묵직하고 서글프다. 모든 건 때가 있다. 타이밍을 잃으면 수고·비용은 비례해 늘어난다. 그럼에도 정작 ‘때’는 수줍은 소녀처럼 와 날쌘 토끼처럼 달아난다. 시작이 반이라지만, 노후준비만큼은 시간투여가 효과확보에 비례한다. 데드라인은 50대다. 사람·환경마다 다르나, 50대는 노후품질을 가름하는 클라이맥스다. 더 일찍도 좋지만, 호흡조절에 실패하면 당혹스럽기에 본격대응은 50대부터가 바람직하다. 다행인 건 50대의 자연스런 변화·흐름이 은퇴과제를 자주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다. 해고압박·신체약화·자녀성장 등이 그렇다.

50대는 고빗사위의 연령대다. 현역인생의 정리변곡점이자 노후생활의 터닝포인트다. 자연스레 체감되는 암울한 현실과 불안한 미래를 수용·흡수하는 게 옳다. 예전 같잖은 변화야말로 앞날을 준비하라는 중대한 메시지다. 경고냐 힌트냐의 여부는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당사자의 반응에 달렸다. 대개는 익숙한 ‘일’부터 변화압박이 시작된다. 인생을 함께 한 호구지책·존재이유였던 일이 시나브로 흔들리는 때가 50대부터 본격화되기 때문이다. 확실한 양적성과와 마땅한 숙련기술이 없는 화이트칼라는 특히 그렇다. 고용불안의 감도·강도는 40대와 판이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50대의 첫해인 50세는 지천명(知天命)으로 불린다. 뜻 그대로 순리를 아는 나이란 의미다. 일의 변화가 알려주는 50대의 순리 중 우선순위는 단연 노년설계다. 50대의 일은 노년준비와 동반될 필요가 있다. 어떤 식이든 정규직·대기업·유노조의 안정적인 일과는 벌어진다. 무리한 전직·전업은 오래가지 못한다. 가늘어도 길게 갈 일이 은퇴준비와 결이 맞다. 더 벌기보단 덜 쓰는 식이 결국엔 유효하다. 한국은 60대의 일이 필수인 사회다. 60~69세 경제활동참가율은 OECD 평균(26.8%)보다 높다(46.9%). 60세 정년이 은퇴일 수 없는 이유다.

50대는 노년의 삶을 결정짓는, 놓쳐서는 안될 최후라인이다. 50대의 족적이 노년의 삶을 규정하듯 선제·미시적인 준비야말로 노년품질에 비례한다. 50대 이후가 엇가를 노후가설은 여럿이다. 현상유지의 L자 침체면 다행이다. 떨어지는 칼날처럼 내려꽂는 장기불행이 실은 훨씬 많아서다. 다만 준비되는 50대면 현역경로와 무관하게 U자 반등이든 V자 회복이든 더 나은 은퇴생활도 펼쳐진다. 이런 점에서 50대는 K자의 갈림길이다. 좋아질지 나빠질지를 결정할 출발점이다. 시나리오는 양방향이다. 작은 변화 속에서 큼직한 노후과실을 꿈꾸기에 50대는 결코 늦지도 빠르지도 않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