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이동과 유동의 덫

엄길청 글로벌애널리스트, 미래경영학자
입력일 2020-10-05 10:16 수정일 2021-06-12 01:41 발행일 2020-10-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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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엄길청 글로벌애널리스트, 미래경영학자

일본 한 도시연구회는 도시서민들의 재산형성에 일생동안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것이 일상의 이동비용이라고 보고한 바 있다. 실제로 도쿄의 부유한 사람들은 대체로 도심에 집과 사무실을 갖고 있다. 교외 주거단지에 저렴한 집을 장만한 사람은 출퇴근 교통비용도 많이 냈지만, 후일 집값에서도 이중고를 치른다.

미국 스탠리 덴코의 연구도 부유한 사람들은 하루 중 업무적 이동거리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택배기사는 얼마 되지 않는 수입을 위해 종일 이 동네 저 골목을 누비지만, 택배회사 사장은 자기 방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좋은 직업이나 유망한 사업은 시기와 장소에 따라 정답이 없지만, 삶의 지혜는 변하지 않는다. 인생에서 자기가 살고 일하는 장소의 범위와 뿌리가 그만큼 중요하다.

주식시장은 원래가 발행기능을 중심으로 태어난 시장제도이다. 점점 사업이 커가고 새 일을 도모하려니 타인의 자본조달이 필요해 다수의 돈을 공개적으로 모으기 쉽게 만든 배당수익을 기반으로 하는 지혜로운 합작(collaboration)제도이다. 그러다 보니 중간에 사정이 생겨 양도가 불가피한 사람들을 위해 양도시장을 만든 것이 오늘의 유통시장이다. 원론적으로 발행시장을 1차 시장, 유통시장을 2차 시장이라 부른다.

그런데 오늘날 주식시장은 유통기능만 발달하고 있다. 유통기능을 중심으로 생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역할이 커지기 위함이다. 실체 없는 갖가지 파생거래도 성행 한다. 하지만 긴 시간을 보아 합리적인 투자수익은 보유기간에서 비례적으로 반영된다. 그래서 역사가 긴 오너 대주주 가문이 주로 큰 부자가 된다. 삽시간에 몇 조원 단위의 시가총액이 된 사건은 대개 증시역사에 남지 않는다. 한 시대에 큰 부를 이룬 사람들이 공익재단과 패밀리오피스(재산관리회사)를 만드는 것이 그런 이유에서다. 빌 게이츠나 록펠러가 좋은 예다.

지금 주식을 다루려는 청년들은 1600년 초기 암스테르담 부둣가에서 해양무역을 떠나는 바다사람들에게 소중한 돈을 투자하고, 몇 년을 그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부디 좋은 상품을 싣고 오길 바라는 시민들의 선한 눈동자를 잊으면 안 된다. 모두가 미지의 세계의 건강한 소망과 경건한 동경을 담고, 인간의 용기와 지혜와 단합을 담은 성숙한 꿈과 보람의 결정판이 곧 주식이다.

집을 임대로 사는 것은 가난과 부유의 근본적 차원이 아니다. 아무리 부자라도 잠시 타지에 살면 임대가 필요하다. 그래서 집은 home이고 방문자 숙소는 residence이다. house가 거처가 되던 숙소가 되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home이고 town이다. 이를 닻 내린다 해 anchoring이라고 하고, 그 둘레를 habitat라고 한다. 지금 청년들에게 이런 자기 정착의 거처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런 주택이 요즘은 각종 수익성 유동화의 유혹을 만난다. 이 또한 유동화 중개자들의 생업 터전확장 때문이다. 연일 소송이 이어지고, 가정이 파탄 나고, 개미들의 눈물이 흐른다. 자기 삶의 동굴원형을 만드는데 입주권이며 딱지가 웬 말인가.

주식과 주택은 인간이 만든, 함께 사는 최선의 지혜‘이다. 공동의 믿음, 상호 존중의 신성한 공익지성의 사회자산이다. 투기자의 순간의 이익을 만드는 신기루도 아니고, 탐욕자의 짜릿한 쾌감의 재미를 누리는 머니게임은 더욱 아니다. 논란이 되는 주식 공매도 규제나, 새 지분주택의 등장논의는 그래서 반갑다.

갖고 있지도 않는 주식을 왜 팔게 해야 하는가. 완전시장의 가격과 거래의 효율성 기능제고용으로 연구되어 왔지만 실제로는 해악이 절대로 크다. 주택 가격은 서민과 부자가 같은 공간범주에 크던 작던 오너로 있으면 미래 부의 생성조건은 큰 차이가 없다. 인간과 도시의 생태서식지 상호성 때문이다. 그러나 서민을 부자와 다른 별도공간, 그것도 공간사용자로 두면 영원히 차이가 커진다. 정말 이제 주식과 주택은 이동과 유동의 덫에서 나오자.

엄길청 글로벌애널리스트, 미래경영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