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영식이 남편, 삼식이 남편

김경철 액티브시니어연구원장
입력일 2020-09-17 14:41 수정일 2021-06-12 01:37 발행일 2020-09-1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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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철 액티브시니어연구원장
김경철 액티브시니어연구원장

씨름선수 출신 방송인 이만기가 최근 ‘이 나이에 참고 살아?’라는 주제의 방송에서 “아내가 밥을 안 해주는 것이 가장 힘들다. 황혼 이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식사 문제는 은퇴 부부가 겪는 갈등의 1순위다. 집에서 하루에 몇 끼를 먹느냐가 은퇴한 남자의 호칭으로까지 비하되었다. 가장 인기 있는 남편은 한 끼도 안 먹는 ‘영식님’, 세 끼를 다 챙기는 ‘삼식이’는 공포의 대상이다. 은퇴 후엔 요리하며, 밥상을 혼자 차려 먹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세상이 바뀌었다. 가부장적 권위 의식을 깨야 한다. 삼식이 남편은 성 역할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전형이다. 최근 청소, 빨래, 설거지 등 가사 분담을 많이 하는 대세에도 불구하고 밥은 예외다. 밥하는 게 어려워서일까. 아니다. 다른 건 포기해도 밥은 아내가 차려줘야 한다는 오랜 가부장적 권위의 상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은 가장에 대한 최고의 예우로 대접받고 싶어 한다. 이젠 세상이 바뀌어 남녀평등이다. 밥상에 집착하여 권위를 찾는 구시대적 사고는 버려야 한다. 오히려 가장이라는 권위는 아내를 배려하여 남편이 만든 따뜻한 밥상에서 찾도록 바뀌어야 한다.

둘째, 남자에게 노년의 밥상 차림은 자립 수단이다. 자녀 출가시키고 단둘이 살다 보면 아내가 자주 아프기도 하고, 병원에 입원도 한다. 손주 돌보러 자식들 집에 가 있기도 한다. 황혼 이혼이나, 홀로 되는 만약의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생존 차원에서 밥상 차림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대비해야 한다. 은퇴하면 외식하기도 경제적으로 꽤 부담된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재료 사서 직접 하면 생활비도 적게 들고, 원하는 음식을 챙겨 먹게 되어 건강도 좋아진다. 요리하는 쏠쏠한 재미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인 가구는 전체 세대수의 30%를 넘어 2040년엔 36.4%가 예상된다고 한다. 요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인 시대에 이미 살고 있다.

셋째, 요리로 가정이 화목해진다. 노년의 행복은 배우자와의 관계에 달려 있다. 요리는 배우자와의 사이를 좋게 하는 최고의 수단이다. 주부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은 남이 해주는 밥이고, 가장 힘든 것이 은퇴한 남편의 끼니를 챙겨주는 것’이라 한다. 남편은 은퇴하여 특권을 누리는데, 나이 들어도 매끼 밥을 차리려니 짜증이 날 만도 하다. 맛깔나는 요리 솜씨로 평생 고생한 아내에게 밥상을 차려준다면 얼마나 좋아할까. 빈둥거리며 놀아도 최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요리로 모든 것이 용서되기 때문이다. 요리할 줄 알면 구차하게 아내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된다. 가족 화합은 물론이고, 타인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봉사의 도구로도 활용할 수 있다.

요리나 밥상 차림의 시작은 중년 남성을 위한 요리 교실에 등록하면 된다. 요리 관련 유튜버를 참조하거나 포털 검색으로 손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처음엔 직접 재료를 사서 요리하기보다는, 가정간편식을 이용하면 시작이 수월하다. 조리하다 보면 “밥 안 해줘도 해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계속하면 늘기 마련이다. 은퇴 부부의 행복과 권력은 주방에서 나온다. 황혼의 사랑을 위해 늦기 전에 시작하자.

김경철 액티브시니어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