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민주시대에서 주주시대로

엄길청 글로벌 애널리스트/미래경영평론가
입력일 2020-08-30 14:37 수정일 2021-06-12 01:33 발행일 2020-08-3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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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엄길청 글로벌 애널리스트/미래경영평론가

문명은 진화해도 역사의 정수(essence)는 돌고 돈다. 고대 로마와 아테네 등 도시국가 시절의 직접민주주의가 수천 년의 세월을 넘어 정보통신망의 개인화로 다시 이 시대에 소통정치로 찾아온 것이 가장 대표적 사례이다.

우리나라는 전통농업에서 도시산업으로 삶의 구조가 변화하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 도시로 모여든 노동자들의 지식이 쌓이고 행동이 집단화 하면서 열악하던 노동자의 권익도 꾸준히 향상되어 왔다. 그 힘은 정치적 민주화의 동력으로 작동해 우리 역사의 방향을 민주화된 나라로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다시 그 도시노동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출발로 서서히 인간의 노동자 역할이 감소할 것이란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갑자기 출몰한 코로나 팬데믹 사태는 수시로 사회적 거리와 자택격리를 불가피하게 함으로써 이제 사람들이 다시 대중의 일터로 돌아오는 일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 되어간다. 그 사이에 선진국에서는 개인의 주식시장 투자자 비중이 점점 늘어나면서 개인투자자 중심으로 시장구조가 변하고 있다. 미국이나 한국은 주택구매가 늘어나고 있다. 처음에는 유동성 증가효과를 기대한 주식이나 주택의 차익거래자들의 참여정도로 보았으나, 이젠 새로운 시대현상이란 의미를 던지고 있다.

과거 지주의 광작이 가능한 이앙법이 등장해 많은 소작농들이 떠나야 했다. 수십 명이 나누어 짓던 농토를 몇 사람의 머슴만 데리고 지주들이 직접 관리하는 혁신농업이 등장한 것이다. 결국 농사를 계속하려면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틈틈히 농토를 마련했어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 엄중한 사례다.

오늘의 현상도 미래사회의 진행방향에서 큰 시사점을 준다. 이제 아무리 고용정책을 잘 구사해도 직접 고용의 형태로 지속되는 데는 명백한 한계가 찾아온다. 결국 사람들이 여전히 기업에 참여하는 방법은, 주식을 투자해 그 회사의 주주가 되는 길이다. 그런데 노동자 역할은 자신의 몸과 정신으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나, 자본을 투자하는 일은 모아둔 화폐자산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주택문제도 마찬가지다. 노동자의 기회가 열린 시대는 기숙사도 있고 하숙도 있다. 그러나 급여소득이 불안정한 시대에는 누구나 살 집을 가지고 있어야 마땅하다.

요즘 젊은이들이 주식투자에 관심을 보이고, 소위 ‘영끌’로 집을 장만하려는 일이 대표적이다. 그러다보니 정치가들이 할 일이 참 많은 세상이 되었다.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를 지나 이제는 주주(주식)화, 지주(주택)화의 지혜를 내어놓아야 하고 국민 간의 토론이 시작되어야 한다.

거듭되는 방역 차단으로 서서히 영구훼손 되어가는 대다수 노동자의 소득을 직접 보전해주는 기본소득의 도입은 이제 누가보아도 불문가지의 일이다. 차체에 논의를 넓혀 미래의 예비된 기본소득을 조기에 자본화하기를 희망 하는 젊은 국민들에게는 얼마간의 자본지급을 신중히 시행해 주는 일도 검토할 시점이 왔다. 주택 역시 집값 안정의 문제를 넘어 전 국민 내 집 장만의 구조화로 정책을 보완할 시점이다.

엄길청 글로벌 애널리스트/미래경영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