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커브추월형 노후행복 시나리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일 2020-08-23 14:52 수정일 2021-06-12 01:30 발행일 2020-08-2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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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시한이 걸린 과제는 미룰 수 없다. 그래서 데드라인이다. 살다 보면 시한이 붙은 과제를 숱하게 만난다. 하나를 풀면 또 다른 게 기다린다. 경중은 있으나, 만인의 공통 경험이다. 오죽하면 ‘플랭클린 수첩’처럼 우선순위·시간관리를 도와주는 방식까지 유행할까. 그럼에도 대부분은 당면한 시한 과제 탓에 정작 중요한 인생 숙제를 미루거나 내려놓는 함정에 빠진다. 노후 준비가 그렇다. 가슴을 옥죄는 먹먹함에도 다가설 여유·결심은 쉽지 않은 법이다. 눈앞의 호구지책에 가려진 미래 준비의 부재인 셈이다.

와중에 시간은 흐르고 나이는 먹는다. 입구에 들어선지 금방인 듯한데 출구는 갈수록 뚜렷해진다. 인생 숙제도 비례해 압박을 걸어온다. 과제 시한이 눈앞인지라 오금이 저리지만, 아쉽게도 방법은 마뜩찮다. 훌쩍 지나온 인생이 야속할 따름이다. 후회는 힘들고 반성은 괴로운 순간이다. 이쯤 되면 숙제 못한 학생처럼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좌불안석이 자연스러울만큼 실존적인 노후 불안에 밤잠을 못 이룬다. 작은 퀴즈만 신경 쓰다 정작 기말시험을 망친 격이다. 정작 닥쳐야 체감하는 인간사 딜레마와 닮았다.

대부분의 노후 시작이 이렇다. 안타깝지만 냉엄한 현실이다. 때문에 도전과 희망 대신 포기와 좌절로 방치한다. 한두 번 시도했다 현실에 막혀 준비 자체를 내려놓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올바른 방식은 아니다. 시간은 길고 방법은 많다. 후회와 공포는 조급하다. 인생 100세 시대다. 환갑에 은퇴해도 30~40년은 남는다. 고용제도가 고령 근로를 막는다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내뱉기엔 여러모로 아쉽다. 얼마든 새로 출발할 수 있을뿐더러 하지 않을 수도 없다. 현역 모델의 지속까진 아니나 달라진 환경의 새로운 행복 추구 미션이다. 포기만 안 하면 괜찮다.

‘커브 추월 전략’이란 게 있다. 직선에서 밀렸어도 곡선을 잘 활용하면 추월할 수 있다는 경영학적 발상이다. 일종의 역발상이다. 후발기업의 추격 전략답게 선도 모델을 따라잡는 꽤 유효한 전략으로 평가된다. 커브 전략으로 선진국 반열에 오르려는 중국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선진 모델 따라하기의 추격형과 스스로 미래 경로를 열어젖히는 선도형에 맞선 대안 모델이다. 커브 전략만 잘 짜면 뒤집기가 가능해 주목된다. 상대적으로 시간·금전 등 열위에 놓였다면 고려해봄직하다. 이때 커브는 위기보다 기회로 치환된다. 뒤집힐 수 있겠으나, 뒤집을 수도 있는 고빗사위인 까닭이다.

노후 준비도 마찬가지다. 은퇴 출구가 눈앞인데 노후 대비가 안 됐다고 손놓을 일은 아니다. 여전히 희망은 있다. 실패해도 다시 시도하면 된다. 예고된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탈출하려고 노력하는 자체가 중요하다. 커브 추월로 막판 뒤집기를 노리는 행복 전략을 수립·실천하는 건 준비부족의 중장년에겐 필수 과제다. 동시에 커브 추월에 표준 모델은 없다. 다만 재무항목 불리기보단 생활 이슈 지키기를 우선하는 게 현실적이다. 건강을 키우고 가족을 챙기는 비재무적인 추월 전략이 대표적이다. 세간의 공포 마케팅에 혹해 불리기만 쳐다봐선 곤란하다. 쉽게 돈 버는 길은 없다. 망상이 커브를 만나면 전도될 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추월을 도와줄 개개인의 맞춤전략뿐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