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나만의 스토리를 팔아라

김시래 동국대·성균관대 광고홍보 겸임교수
입력일 2020-07-27 14:23 수정일 2020-07-27 14:25 발행일 2020-07-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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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 동국대·성균관대 광고홍보 겸임교수

대학시절 존경하는 교수님이 “자넨 뭘 잘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침을 잘 뱉는다”고 했다. 입술을 모아 침을 뱉으면 낙하곡선의 궤도가 정밀했다. 매사 그렇듯 반복의 결과였다. 나중엔 기예에 가까웠는데 엄지와 검지로 두개의 원을 만들고 호흡을 가다듬어 입술 끝에 신경다발을 모아 혀끝으로 차내면 침은 그 두 개의 원을 정확히 통과했다. 시범을 보이려는 나를 말리며 교수님은 침 잘 뱉는다고 소개한 사람은 자네밖에 없다고 하셨다. 특별하니 지금도 그 분의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대기업 임원을 거치며 많은 사람을 만났다. 수많은 인연 속에 특별한 이야기를 가진 자만이 뇌리 속에 자리잡았다. 제품을 파는 불변의 법칙이 차별화라면 당신의 매력을 드러내는 방법도 똑같다. 당신만의 이야기를 전해라. 여기에도 방법이 있다. 당신이 모년 모월 겪은 에피소드다. 자신만의 경험은 홈링에서 싸우는 권투시합이다. 자연스러운 표정과 억양으로 당신만의 캐릭터가 상대에게 각인된다.

대학 졸업을 앞둔 1990년 겨울, 은사이신 리대룡 교수는 대웅제약 홍보실 추천서를 써 주셨다. 자네는 인상이 험하니 자주 웃으라고 하셨다. 그만큼 불리하니 적극성이 중요할 것이라고 했다. 제약업은 영업적 기질이 생명이다. 절박함을 승부처로 정했다.

실무면접을 통과하고 최종 임원면접에 들어갔다. 한 명 뽑는데 4명이 자리에 앉았으니 4대 1의 경쟁률이었다. 회장과 광고 홍보를 담당하는 여자 상무가 정면에 앉아 있었다. 여자 상무는 회장의 부인이었다. 게다가 광고홍보과를 지원했으니 그분에게 당락의 열쇠가 달려 있었다. 그 분은 회사 꽃꽂이 동호회 회장이었다. 내 차례가 왔다. “뭘 잘 하시나요”라고 물었다. 물론 면접장에서 빠지지 않는 질문이다. 침을 기가 막히게 뱉었던 나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꽃꽂이 빼놓고 다 할 수 있습니다.” 여자 상무는 빙그레 웃었다. 당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럼 뭘 잘하는지 보여줄 수 있나요”라고 다시 물었다. 난 큰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The road is long, with a many a winding turns.” 더 홀리스(The hollies)라는 밴드의 ‘He ain’t heavy, he’s my brother’라는 팝송이었다. 아마추어는 흉내내기 어려운 고음으로 시작하는 노래다. 난 있는대로 불러 젖혔다. 돼지가 죽어갈 때 낸다는 그 소리였다. 그 분은 손을 내저으며 그만하라고 했다. 곧 면접은 끝났고 며칠 후 합격통지서를 받아 쥐었다. 남극에서 냉장고를 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4년 뒤 제일기획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했을 때도 비슷했다. 작은 회사에서 지원한 단점을 극복해야 했다. 담대한 배짱과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자기소개서에 먹을 갈아 찍어 만든 발도장 그림 위로 ‘족적을 남기겠습니다’라는 카피를 써서 제출했다. 최종 면접 때 사장이 지원 이유를 물었다. “호랑이가 되고 싶어 호랑이 굴로 들어왔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대답 때문에 뽑혔다고 했다.

적극적인 태도는 설득의 기본이다. 지리멸렬의 협상가에게 설득의 기회는 없다. 단 자신만의 이야기로 밀어부쳐야 한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자신의 이야기는 결국 자신을 닮을 것이다. 자, 당신은 누구인가.

김시래 동국대·성균관대 광고홍보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