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전지적 참견에 대한 참견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20-07-06 14:14 수정일 2020-07-06 14:15 발행일 2020-07-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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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는 모든 일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하지만 전지적 참견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일이 한 건도 쉽지 않다. 전지적 참견자에게 왈가왈부 참견할 때는 더구나. 연기파 원로배우 이순재의 전 매니저에 대한 갑질 논란에 대한 전지적 참견 시점의 목소리가 뜨겁다. 이순재 측이 전 매니저에게 쓰레기 분리수거 등 해당 외 업무를 지시하는가 하면 수당 미지급, 휴가 부족 및 법정 근로시간 초과 의혹이 불거졌다. 더불어 머슴처럼 대하는 막말, 폭언, 부당해고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법적 대응을 하려던 이순재 측이 사과하면서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만 감정적 앙금, 법적 문제는 아직 남아있다.

이순재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일반 근로자와 달리 대인적 신뢰관계가 중요한 매니저라는 직종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또 하나는 녹취록 등을 통해 드러난 불법, 불공정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물론 연예인 매니저를 마치 프리랜서 직군처럼 파악하고 법적 근로자의 틀에서 꺼내야 한다면 이번 소동은 찻잔 속의 작은 소용돌이에 불과하다.

연예인-매니저 관계가 마치 집사나 가족 같은 사이이기 때문에 법률적 기준의 적용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은 이순재의 또 다른 예전 매니저가 이순재를 적극 옹호하는 입장 글이나 이순재 고정팬들의 변함없는 지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순재 사건은 법률적 관점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 문제를 제기한 전 매니저도 결국 법에 호소하고 있다. 불분명한 근로계약, 부당한 근로조건에 업무 외 근로, 열정페이 등의 부조리는 우리 사회 곳곳에 이미 만연돼 있다. 고용주의 지시와 감독, 통제 행위 여부에 따라 근로자 여부를 판단하므로 계약서 없는 매니저 직종이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가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선 근로계약서 미작성에 따른 근로기준법 위반부터 이순재 기획사의 법적 책임이 발생한다.

이를 바탕으로 시간외 근무수당, 4대 보험, 부당해고 관련 쟁점 등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 월 180만원(2020년 주 40시간 노동시간 기준 최저임금 월 179만5310원)을 받기로 약정한 매니저가 근로자 수 5인 이상의 사업장에서 일한다면 연장 근로시간에 대한 임금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근로자 수 5인 미만인 연예기획사라면 법정근로시간 및 연장근로수당(가산수당) 규정과 부당해고 규정도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5인 미만의 연예기획사라도 1주 1일 이상의 유급휴일 및 주휴수당은 반드시 부여해야 한다.

또한 근로자의 안정적 생계를 보장하는 4대 보험은 5인 미만 기획사인지 여부 및 사업주/근로자의 의사에 관계없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기획사 대표가 임의로 매니저의 4대 보험을 거부한다면 매니저는 근로자 지위 확인 청구 등으로 4대 보험의 소급적 가입까지 주장할 수 있다. 쓰레기 분리수거, 신발 수선 등 허드렛일도 더이상 ‘관행’이라고 넘어갈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2019년부터 도입된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퍼렇게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연예인의 일정관리 등 매니저의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기획사, 연예인이 매니저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는 ‘직장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이는 이순재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연예인, 매니저들의 숙제다. 이순재라는 대배우에 대한 존경심, 내부적 갈등을 조용히 풀지 못한 아쉬움은 별개다. 연예기획의 전문화, 매니저의 기본 인권이라는 시점에서 바라보자. 전지적 참견자는 결코 전지전능하지않다. 전지적 참견자에게는 전방위적 후견이 필요하다. 매니저가 웃어야 연예인도 웃는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