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우리에게 소통을 許하라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입력일 2020-07-01 15:48 수정일 2020-07-01 17:26 발행일 2020-07-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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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영화 ‘아메리칸’은 무기를 직접 제작해 타깃을 제거하는 청부살인업자 잭(조지 클루니)의 이야기다. 언제부터인지 누군가의 감시 중인 시선을 느끼고 자신이 타깃이 됐음을 직감한 잭은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은둔 생활을 하게 된다.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기 전 한 여자와 사랑을 나누게 되면서 그의 신분이 드러나게 되고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만다.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단절된 삶을 살아야 하는 그에게도 사람과의 소통은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비대면 접촉이 강화되다 보니 인간은 더욱 고립되고 단절된 삶을 살게 됐다. 온라인 매체가 다양하게 활성화되었다고는 하나 우리는 직접 소통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인간은 ‘외롭거나, 천박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여기서 외로운 삶이란 철학자 칸트처럼 이성의 명령에 따라 논리적으로 사는 삶이다. 이런 삶은 고결할 순 있지만 희로애락을 나눌 친구가 없다. 반대로 천박한 삶이란 이성보다는 감정과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다. 이 경우 삶은 조금 천박할 수 있어도 사회적 관계는 더 윤택할 수 있다.

소통의 원래 의미는 메시지를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보다 어떤 경험을 함께 한다는 뜻이다. 공통의 경험을 함께 나누는 것이 곧 소통이다. 영화 ‘아메리칸’에서 잭이 원했던, 천박한 삶이 바로 경험을 공유하는 소통의 진짜 모습이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세계 곳곳에선 매일 얼굴을 가리고 사는 수백만명의 여성들이 있었다. 파키스탄 여성들이 주로 착용하는 니캅과 부르카가 그렇다. 하지만 이들이 마스크 착용은 거부한다. 마스크는 의학적인 목적이고 니캅과 부르카는 종교나 문화적 이유이기 때문에 착용하는 동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동기가 다르니 소통의 경험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태초부터 인간은 타인의 표정을 읽고 경험을 공유하는 일에 익숙해져 왔다. 찰스 다윈은 1872년에 출간한 저서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서 이러한 능력이 진화의 강점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얼굴에서 감정을 읽는 법을 배우는 것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돕고 오해를 줄이며 효율적이고 조화롭게 움직이도록 도와준다.

그래서일까. IBM은 1993년에 도입한 재택근무를 24년만에 폐지했다. 컴퓨터 등 사무정보화 기기와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IBM은 전체 직원 38만명 가운데 40% 정도가 사무실 밖에서 원격근무 형태로 일해왔다. 이유가 뭘까? 원격근무자는 혼자 있다 보니 소외감을 느끼기가 쉽고 동료와 업무 상황에서 단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업무의 집중도를 떨어뜨리고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게 됐다. 천박할 수 있어도 사회적 관계의 윤택함을 포기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우리의 삶은 영화 ‘아메리칸’의 청부살인업자 잭과 많이 닮아있다. ‘원치 않게 세상 사람들과 단절해야 된다는 것’ ‘언제까지 언택트로 살며 인내해야 하는지’가 꼭 그러하다. 소통은 인간이 더불어 사는 사회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인류의 지혜다. “하지 마라” “만나지 마라”는 부정의 강요와 더불어 “이렇게 소통하니 좋아요”라는 대안도 함께 제시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