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지구촌 개미들의 합창

엄길청 글로벌애널리스트
입력일 2020-06-28 15:00 수정일 2020-06-30 14:01 발행일 2020-06-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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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엄길청 글로벌애널리스트

WHO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적 대유행에 접어들었다고 발표하자 일제히 지구촌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접어들었다. 너나없이 인터넷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눈앞의 돈들은 누구 손에도 잡히지 않는 두려운 시간이 찾아왔다. 바로 이 때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세상과 소통하면서, 추풍낙엽처럼 폭락하는 유명 브랜드 주식들의 낙엽 줍기를 시작했다. 마음 속으로 서로를 위해 주식을 사주는 비 영합적(nonzero-sum) 투자게임에 접어든 것이다. 각국의 중앙은행들도 즉각 앞서니 뒤서거니 무제한으로 돈을 풀었다.

역사적으로 주식투자의 흐름을 크게 가르는 일은, 전쟁이나 혁명이나 재해가 닥치면 생기게 되는 것 같다. 2차 산업혁명기인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주식시장에선 찰스 다우나 그랜 빌 등 주가의 장기추세를 보는 기술적 분석가들이 크게 활약을 했다. 그래프 분석이 이 시기에 크게 발달했다.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주식투자는 기업의 재무자료인 회계정보를 중시하는 기본적 가치시장이 크게 시장을 리드했다. 워렌 버핏의 스승이라는 벤자민 그레이엄이 큰 역할을 했다,

미국과 소련이 스타워즈라는 우주공간 점령전쟁을 시작할 때, 증시의 투자이론은 마코위츠의 효율적 시장가설이라는 수리통계적 모델이 적용되면서 오늘의 분산투자이론인 포트폴리오 투자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자본자산가격결정모형이나 재정가격결정모형 등의 계량도구들이 속속 등장했다. 다시 1,2차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글로벌 증시의 가격변동성이 급격히 커지자, 블랙-솔즈 모형 같은 파생상품 가격모델이 등장해 주목을 끌었고, 오늘의 선물 옵션 스왑 같은 번외 파생시장들이 시카고선물시장 등에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인공지능까지 등장한 오늘날 주요 투자이론들은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실 지금 동학개미나 로빈후드 같은 투자이론을 역사적으로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나름 주식시장에 잘 대응하는 투자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 후일 지금의 이 팬데믹의 공포 속에서 등장한 개미투자자 주도현상을 통해 발생했을 지도 모르는 새로운 주식시장 투자이론은 없을까 생각해 본다. 만일 후일에 있었다고 한다면 그중 하나는 상호작용(interaction)과 보상제공(payoff)의 대중적이고 암묵적인 공유라는 비대면의 시대배경을 한번 생각해 본다. 여기서 상호작용이란 서로 인터넷을 통해 항상 소통하는 것을 의미하며, 보상제공이란 개미들이 암묵적으로 서로의 대의를 위해 주가를 올려가면서 조금씩 서로의 차익을 받쳐주는 것을 말한다.

만일 나라마다 대표적 대형주인 블루칩 주식을 가지고 서서히 대중들이 서로에게 이익을 주면서 사고판다면 이건 기본소득이외는 평등한 소득기회가 없는 이 시대에 비 영합적인 선의의 담합투자라고 할 수도 있겠다. 누가 이런 시장을 놓고 대중의 반대행동으로 물결을 뒤엎으려 했다가 정말 대중들의 후속참여가 또 봇물을 이루면 천하의 투자대가라도 속수무책이 된다.

지금 익명의 대중을 보고 익명이라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이번 팬데믹시장의 특징이요, 불가사의 일수도 있다. 그리고 대중투자가의 뒤에는 제로 기준금리라는 무위험이자율이 있다. 위험자산의 투자위험을 견주어 주는 무위험이자율이 제로부근인 상황에서 대중들의 선의의 선택은 위험자산에 다소 과감할 수도 있다.

애국이라고 특정하기도 어렵지만, 탐욕으로 볼 수만도 없는 작금의 주요국가의 개인투자가 활약은 작은 나라인 발트 3국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소련의 탱크와 맞서 양손으로 인간 띠를 만들어 몇 날 몇 일을 다 같이 합창하며 감격의 독립을 쟁취한 역사만큼이나 의미 있게 들린다. 와튼 스쿨의 조나 버거는 “대중은 서로에게 져주면서 같이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다”고 했다. 이를 그는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라고 했다.

엄길청 글로벌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