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현명한 비즈니스 대화법

김시래 동국대·성균관대 광고홍보 겸임교수
입력일 2020-05-25 14:14 수정일 2020-05-25 17:42 발행일 2020-05-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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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 동국대·성균관대 광고홍보 겸임교수

어느 조찬 세미나에 갔을 때다. 옆자리에 연세 지긋한 통신 회사의 임원이 자리잡았다. 연단의 발표자는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의 미래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사방에 널린 지식을 모아 전달했을 뿐 새로운 관점이 빠져 있었다. 발표가 거의 끝나갈 무렵 옆자리의 그 분이 소감을 물어왔다. 솔루션이 부족한 발표였다고 총평하고 나름의 지식을 동원해서 몇 가지 방안을 덧붙였다. 실수였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성급함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지름길이다. 발표자는 그 분의 외동딸이었다.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먼저 상대의 의견을 물어야 했다.

상대의 부정적인 질문도 곤란한 순간이다. 역시 성급한 답변은 금물이다. 상대의 의도를 먼저 읽어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받은 질문을 질문자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말 그대로 “죄송합니다만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요”라고 다시 물어보는 것이다. 부정적인 질문은 질문자와 답변자의 역할이 바뀐 상황을 연출해라. 질문자는 다시 질문을 받았기에 질문의 배경을 설명하며 숨은 의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만약 그가 조리있고 합리적인 근거를 대며 설명을 이어가면 그는 제대로 된 궁금증을 가진 자다. 그의 답변을 듣는 그 순간은 내 대답의 논리를 정리하는 시간이다. 다 듣고 최선을 다해 능력껏 답변하면 된다. 정중하게 되묻는 것은 그 자리에 배석한 최고층에게 자신의 식견이나 업무 몰입을 과시하려는 기회주의자에게도 좋다.

솔직함도 중요하다. 당장은 곤란하지만 길게 보면 솔직한 태도가 파트너십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경우가 많다. 광고기획사에서 근무할 때다. 연간광고 계획을 발표하며 미국의 애니메이션 캐릭터 ‘심슨 가족’을 모델로 제안한 적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CEO는 대단히 만족해했다. 그러나 뜻밖의 변수가 가로막았다. 그 캐릭터는 여기저기서 사용 허가를 받아야 했고 모든 과정을 거쳐 제작을 끝내기까지 6개월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광고주의 방영 계획은 두 달후였다.

방법이 없었다. 무턱대고 덤벼든 게 문제였다. 광고주를 찾아가 사정을 설명해야 했다. 책임은 제작팀과 모델을 섭외한 모델 에이전시였다.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실무 책임자였던 나는 정확한 경과를 밝히고 책임을 면하고 싶었다. 내 잘못이 아닌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인과 경과를 세세하게 들려주면 상대 입장에선 짜증나는 일이 된다. 책임소재는 광고주의 관심사가 아니다. 책임에 대한 인정과 대책, 대안이 그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다.

나는 회사를 대신하는 실무팀장인 내 실수를 인정하고 향후 대책과 앞으로의 일정 계획을 문서로 적어 제시했다. 그들은 문서대로 차질없이 진행해 줄 것을 주문했다. 나는 책임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풀죽은 모습으로 1층의 회전문을 나오는데 나의 파트너였던 부장이 내게 “열심히 하다보면 그럴수도 있지요 뭐”라며 다독여주었다. 그 분은 지금 그 회사의 최고위층이 되었고 그 때의 고마움은 지금까지 남아있다. 개인보다 일을 우선했던 태도가 그들의 화를 진정시키고 일을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끈 것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솔직함은 자신보다 일의 성과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태도다.

김시래 동국대·성균관대 광고홍보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