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하나의 지구'는 옛말

엄길청 글로벌 애널리스트/미래경영평론가
입력일 2020-05-27 14:32 수정일 2020-05-27 17:44 발행일 2020-05-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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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외연 확장이 불러온 가장 큰 비용의 하나는, 대도시 성장전략에서 나타난 도심의 부동산가격 상승과 서민들의 이동비용 증가와 대도시 주변의 자연훼손이다. 코로나19 펜데믹도 국제사회 간 교류의 외연이 넓어지면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채 생겨난, 돌이킬 수 없이 날벼락이다. 국제사회 개방과 통합을 이끈 사람들에겐 천추의 한으로 남을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만든 자들이 잘못된 것을 안 순간, 그들은 도리어 나서서 정 반대의 수습책을 쓴다. 지지기반이 큰 현 정부가 사실상 서울이라 할 수도권 외곽에 3기 신도시를 바짝 붙여 지정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미국이 중국에게 교류와 교역에서 다시 먼 거리를 두고자 예고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크고 엄청난 일들이 사실이 되고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데는 많은 우여곡절이 따르지만, 경세가(statesman)들은 특별한 조짐과 전조에서 그 방향을 본다.

아직 펜데믹 희생이 미국을 다 지나가지도 않았는데, 미국 국무장관은 중국을 다시 자유진영 동맹의 적대국의 자리로 단호히 돌려놓고 있다. 1978년 데탕트 정책으로 해묵은 동서 이데올로기 갈등을 치유하려 했던 키신저 미 국무장관이 핑퐁외교로 중국을 자유시장경제로 불러들인 이후 40년 만에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다시 우호의 장에서 떠나보내려 한다.

그 편린(portion)들이 드러나고 있지만, 코로나 사태 이전에 미국은 이미 새로운 서방세계 기술동맹을 결성하기 시작했다. 자유민주 진영국가 간의 경제번영네트워크 EPN(economic prosperity network) 구성전략이다.

평화유지나 환경보호, 인류 구제의 문제로 ‘하나의 지구’가 화두가 된 지 오래고 그동안 WTO 결성이나 교토의정서 등에 쏟은 정성이 하나 둘이 아니다.

하지만 아직 덩치만 크지 중진국도 채 못 되는 중국의 ‘일대일로’란 지나친 경제패권주의적 오버행동이 화를 불러들이고 있던 중에 우한 발 바이러스가 방아쇠를 당기게 했다.

코로나 이후에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 하나 있다. 미국 발 세계주의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세계 희생을 강요한다는 주장이 때로는 제3세계나 환경인류주의자들의 공분을 자아냈지만, 이제 미국은 그 자리를 스스로 떠나고 있다. 그러면서 자유민주진영의 국가 간에 “공동의 번영을 원한다면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기술동맹으로 들어오라”고 외통수 카드를 던지고 있다.

시간의 문제였지, 언젠가는 국제사회의 테이블에 던져질 아젠다 였다. 다보스포럼은 이 문제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이미 각론적으로는 미국, 독일, 우리나라 등이 어떤 부분에선 새로운 기술의 표준을 합의해 나가고 있기도 하다.

정보통신이나 바이오나 미국이 대부분의 지식재산권과 학문적 뿌리를 가진 상태에서 자유진영 국가가 아니어도 기술생산 국가라면 이 구도를 받아들이지 않기란 참으로 어렵다.

압축하면 항상 밀도가 높아지고 새로 증폭된 에너지가 나온다. 미국과 이에 동조하는 나라들이 코로나 위기에 빠진 자국 경제를 다시 되살리려는 구심력(centripetal force)으로 EPN카드를 물리치긴 참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엄길청 글로벌 애널리스트/미래경영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