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노후준비 1순위 '자녀독립'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일 2020-05-18 14:31 수정일 2020-05-18 14:33 발행일 2020-05-1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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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은퇴생활의 최대복병은 결국 자녀문제로 귀결된다. 무자식 상팔자란 말처럼 의외로 자녀이슈가 부모노후의 생활품질을 가름하는 주요변수로 거론된다. 성글게 결론내면 자녀독립만 잘 시켜도 노후생활은 절반이상의 성공이다. 뒤집으면 제아무리 잘 준비해도 의존자녀가 고령부모의 뒷덜미를 잡아챌 여지가 많다는 얘기다. 주변을 둘러보면 의외로 자녀문제로 고군분투 중인 은퇴부모가 적잖다. 인생2막을 위한 거의 완벽한 밑그림을 완성했지만, 자녀변수로 무너지는 사례가 상당하다. 

키워보면 알겠지만, 자식농사 참 어렵다. 맘대로 되는 게 거의 없다. 품안의 자식이라지만, 내놓기도 힘들고 나가지도 않는다. 사실상 경제학적 자녀효용은 사라졌다. 유희·보험·노동의 3대 출산동기 중 유치원이면 끝나는 유희효용 말고는 희박해졌다. 가정경제를 거들거나(보험) 부모노후를 책임지는(보험) 자녀존재는 옛말이 됐다. 6~7세까지 재롱떨며 행복감을 안겨주는 유희효용만 해줘도 고마울 따름이다. 딱딱하고 살벌한 접근이나, 전엔 충분히 먹혀들던 자녀효용이었다. 이젠 아니다.

자녀출산을 경제논리로만 풀 수는 없다. 정성·심리적인 자녀가치는 단순한 금전효용을 넘어선다. 부모에게 자녀는 사실상의 전부다. 결코 돈과 자녀는 치환될 수 없다. 그럼에도 최근의 출산거부가 고용악화·소득불안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감성·본능적 접근만으로는 설명력이 떨어진다. ‘노후준비=자금축적’의 현실론도 ‘자녀=금전’으로 자연스레 닿는다. 노후를 위한 자금축적 여지를 자녀가 쥐고 있어서다. 즉 스스로 앞가림을 잘해줘 뒷바라지만 없어도 노후준비는 한결 가볍다.

노후승패는 자녀독립의 성공여부에 달렸다. 따라서 자녀를 완벽한 독립주체로 내보는 게 최우선과제다. 1인분의 인생살이를 잘 살도록 지도·유도하는 게 돈을 쌓아두는 것보다 먼저다. 적어도 힘들게 쌓은 노후곳간을 지켜낼 우선방책이다. 2차 가족으로의 거주·경제적 분리는 필수불가결하다. 자의든타의든 분리가 힘들거나 길어지면 금전지원만큼은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게 권장된다. 살벌하게 들리겠으나, 그게 곧 서로가 사는 길이다. 부모의 노후불행도 자녀의 봉양압박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모가 최후보루로 버티고 설 때 자녀독립도 한층 연착륙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게리 베커는 ‘썩은 자식론(Rotten kid Theorem)’을 내놨다. 돈줄을 쥔 부모가 경제적 보상체계를 잘 조절하면 못난 자녀도 뜻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이론이다. 전제는 돈줄이다. 재산을 움켜쥐란 의미다. 한국처럼 자녀에게 올인하는 행위는 노후생활의 독립성은커녕 주도권조차 위험해짐을 경고한다. 즉 뒷배가 든든할수록 더 많이 오래 뒤를 기대하는 자녀를 양산한다. 하기야 어떤 부모가 자녀를 ‘썩은’ 신세로 전락하게 내버려두겠는가. 모든 건 부모에 달렸다.

은퇴자 3대 바보란 말이 있다. 재산 물려주고 용돈 받아쓰는 게 첫째요, 함께 살며 손주 봐주는 게 둘째다. 셋째는 자녀·손주 올까봐 큰집을 고집하는 경우다. 먼저 겪어본 많은 은퇴경험자의 공통훈수다. 적어도 재산과 용돈은 절대 맞교환의 상대가 아니다. 달라 하고 주고 싶어도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선택은 잠깐이나, 번민은 긴 법이다. 무엇이 자녀를 위한 길인지 곰씹어볼 때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