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N번방의 선물? 독배?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20-05-11 14:09 수정일 2020-05-11 14:10 발행일 2020-05-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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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N번방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조주빈 일당이 주도한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은 우리나라 성범죄의 황망한 현실과 위선적인 성인지 감수성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계기였다. 성범죄를 규제하고 성에 대한 의식을 형성하는 기존 정책이 얼마나 비효율적이며 불합리했는지 절로 탄식이 나왔다. 법적 공백을 향해 빗발치는 요청, 불의에 불타오르는 분노에 떠밀려 국회는 디지털성범죄 처벌강화 및 재발방지 법안을 초고속 스피드로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개선점은 뚜렷하지만 ‘N번방 방지법’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과연 이는 N번방이 가져다준 고마운 입법 선물일까 아니면 독이 든 성배일까?

처벌요건 및 형량의 강화로 악질적인 성범죄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N번방 방지법은 디지털성폭력 처벌 범위를 확대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성폭력 범행 관련 범죄수익을 환수하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의제강간 연령을 16세로 상향하고 (유사)강간의 계획도 처벌하는 ‘형법’ 그리고 아동·청소년 성착취 처벌을 강화하는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으로 기본틀을 구성하고 있다.

개정 성폭력처벌법은 불법촬영물의 유포, 촬영, 판매 등을 넘어 단순히 소지·구입·시청한 경우에도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성착취물의 단순 시청도 범죄로 구성하려는 의도는 수긍된다. 문제는 이 모든 적발을 위해 국가기관의 사이버상 검열, 감청이 무제한 합리화되고 궁극적으로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동포로노에 대해 무척 엄격하게 처벌하는 미국에서조차 개개인이 의도치 않은 단순 시청은 처벌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부쩍 강화된 국가기관의 빅브라더 감시가 걱정스러울 뿐이다. 국가마다 적법 기준은 다르지만 합법적 포로노물을 비롯한 개인적인 섹스 영상도 사이버공간에서 버젓이 유포되는 마당에 어떤 성행위 영상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촬영, 유포되었는지 모르는 경우까지 잠재적 범죄로 규정하는 입법은 처벌만능주의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조주빈 류의 범죄는 당연히 근절해야 한다. 하지만 범죄 재발의 목적을 넘어 법의 안정성, 예측가능성을 해치는 입법 남용도 근절돼야 한다.

‘의제강간’의 기준연령을 기존 만13세 미만에서 만16세 미만으로 상향한 입법도 오늘날 청소년의 인권 및 실생활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의심스럽다. 특히 피해 미성년자가 13세 이상 16세 미만인 경우에는 성행위 상대가 만19세 이상 성인일 때만 처벌한다는 단서 조항이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일부 존중한다는 취지라면 획일적인 나이 기준으로 국가가 젊은 세대들의 성행위 결정권에 관여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전체주의적 폐습 아닐까?

입법을 통한 ‘피해자 보호주의’ 관점만으로는 빅브라더 권력만 더 활개칠 뿐이다. 조주빈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각종 성적 착취를 오랫동안 묵인해온 우리 모두가 N번방 만행의 공범자라는 죄의식을 갖고 이를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구조적 변화를 꾀해야 한다. 선물? 독배? N번방의 갈림길은 이제 다가왔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