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자동차 사고 나일론 환자 나오지 않게 하려면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 겸 김필수 자동차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0-05-17 14:38 수정일 2020-05-17 14:39 발행일 2020-05-1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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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 겸 김필수 자동차연구소 소장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 겸 김필수 자동차연구소 소장

우리나라의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재작년 처음으로 3000명대로 줄었다. 조만간 2000명대로 진입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커진다. 하지만 교통사고 지수는 선진국 수준에 크게 못 미친다. 근본적인 개선책 마련이 절실하다. 운전자들의 선진 교통의식이 부재한 상황에서 교육이나 캠페인 활동 등도 매우 부족하다. 균형 잡힌 대처가 필요하다.

한국은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경중을 떠나 우선 병원으로 직행해 진단서부터 뗀다. 나일론 환자는 물론 부도덕한 사례도 즐비하다. 사고 후 먼저 병원으로 달려가 진단서 등을 발행하는 사례가 약 60%에 이른다. 이웃 일본은 약 6%에 불과하다. 이제는 가해자가 당당하게 보험처리하면 된다고 하면서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않는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담률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물론 예전과 달리 손해보험협회 등 관련 기관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개선했지만 여전히 억울한 사례가 많다. 경찰은 ‘전방 주시 소홀’과 ‘안전거리 미확보’ 항목으로 가해자를 가려낸다. 그렇지만 경찰청이나 도로공사, 관련 기관에 자문하는 필자가 보기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규정이 존재해 판단하기 어려운 사례가 많다.

먼저 고속도로의 터널 출구에서 편도 2차선에 정지해 있는 차량을 뒤에서 온 차량이 추돌한 사례다. 비상등을 켜고 있어도 달리는 속도 때문에 대처하기 쉽지 않다. 들이받은 차량의 운전자가 당연히 가해자가 된다. 문제는 분담 책임의 비중이다. 대부분 후방 차량의 책임이 100%라는 결론에 이른다. 당연히 해당 차량의 운전자는 항변한다. 위험한 구간에서 도로 위에 차를 세워둔 사람에게는 전혀 잘못이 없다는 뜻과 같기 때문이다. 서있던 차도 최소한 10~30%의 책임은 있다. 잘 보이지 않는 터널에 차를 세워놓으면 인명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책임에 대한 형평성이 완전히 어긋한 경우다.

새벽 어두운 상태에서 고속도로 1차선에 비상등을 켜고 정지해 있는 차량을 뒤차가 추돌한 사례도 있다. 2차선에서 운행하던 트럭이 무리한 운전으로 미끄러지면서 차량이 돌면서 급하게 멈췄고, 뒤차는 트럭의 눈부신 전조등으로 잘 보이지 않아 사고가 난 것이다. 트럭은 완전히 돌아서 1차선 일부와 2차선 사이에 멈춰있고, 뒤따르던 승용차 한 대가 1차선에서 비상등을 켜고 정지해 있는 상황이다. 얼마 후 1차선으로 지나가던 시속 약 100㎞ 속도의 승용차가 서있던 차량을 받은 것이다. 맨 뒤에서 온 차량은 100% 책임을 지게 됐다. 비접촉이긴 하지만 사고를 유발한 트럭은 유유히 사라졌다. 억울한 운전자는 경찰에 신고했다. 전조등의 빛 때문에 트럭의 번호판은 보이지 않았다. 뒤차는 모든 잘못을 뒤집어썼다.

두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시속 100㎞ 이상으로 달리는 터널이나 고속도로 등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장소에서도 차량에 문제가 발생해 정차를 했을 때 비상등만 켜고 내린 뒤 신고하면 모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형평성과 타당성, 합리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모두에게 안전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잘못하면 편법을 악용하는 사례가 급증할 것이다. 안전운전 선진국이 되려면 이러한 소소한 사례를 들여다보고 하나하나 개선해야 한다. 더 이상 억울한 운전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 겸 김필수 자동차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