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신뢰를 쌓는 거래 방식

김시래 동국대·성균관대 광고홍보 겸임교수
입력일 2020-04-19 14:10 수정일 2020-04-27 09:38 발행일 2020-04-2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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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 정보경영학 박사·트렌드라이터
김시래 동국대·성균관대 광고홍보 겸임교수

설득은 타이밍을 찾아내고 순서를 조절하는 기술이다. 당신이 보는 케이블방송이나 자주 들르는 마트에서 소리소문없이 당신의 지갑과 카드를 노리는 매복자들이 있다. 그들은 수시로 코를 베어가는데 어느 정도 자본주의 핏줄기를 돌리는 순기능도 있다. 

로우 볼 테크닉(Low ball technic)은 이들이 거래를 시작할 때 자주 쓰는 방식이다. 공을 낮게 던져 몸을 숙이게 만든다는 의미인데 고객에게 먼저 저렴한 상품을 소개하여 구매를 유도한 다음 더 나은 상품을 보여주어 비싼 상품으로 유도하는 기술이다.  “파격 할인 대잔치”라고 크게 써붙인 가게에 80% 할인상품을 보고 들어 가지만 그것만 사가지고 나오는 사람은 드물다. 언감생심이라고 좀 더 좋은 제품이 걸려있는 정상 매대로 눈이 가게 마련이다. 미끼상품의 덪에 걸리는 순간이다. 이 때 구매욕구에 불을 붙이며 한몫 거드는 것이 신용카드 할부다. 단지 돈을 나누어 내는 것인데도 지불에 대한 부담이 없으니 마음이 가볍다. 구매 목록이 늘어나며 충동구매로 이어진다. 

그래도 망설이는 손님은 소매를 붙잡고 뭘 하나 더 얹어주는 경품(That‘s Not All technic)으로 공략한다. 당신에게만 제공되는 특별한 기회라는 말이 솔깃하게 들려온다. 케이블방송에서 여자 호스트가 방송의 중반을 넘어갈 때 터트리는 단골 메뉴다. 그녀가 입꼬리를 올리며 예약만 해도 순금열쇠나 자동차의 주인이 되는 추첨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할 때 주문 전화의 콜수가 급격히 증가한다. 

시간이나 물량을 제한해서 사람들을 줄 서게 하는 한정마케팅(Short supply technic)도 그들이 자주 쓰는 방식이다. 요란한 벨소리와 함께 십분동안 돼지불고기를 반값에 판다는 판매원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 싱싱함을 포기하고 저렴한 가격을 쫒아 남은 물건을 순식간에 소진시키는 고객들이 갑자기 몰려든다. 나만 손해 볼 수 없다는 비교 심리가 작동한 탓이다. 점심시간에만 숫자를 한정해서 왕갈비탕을 파는 강남의 유명한 고깃집도 그런 심리를 이용한다. 

이번에는 보고 문서에서 핵심 내용을 배치하는 순서를 살펴보자. 두괄식은 결론을 앞에 두는 형식이다. 효과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과정이나 근거가 소홀히 다루어질 염려가 있다. 상대가 경청의 태도를 지니고 있고 현안에 대해 상황 파악이 끝난 상태라면 상관없다. 반대로 결론을 맨뒤에 두는 미괄식은 상황이나 사례를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 때 정리하는 방식이다. 성격이 급하거나 전문성을 지닌 상사에겐 금물이다. 병렬식은 이슈별로 구분해서 나열식으로 정리하는 방법이다. 검토된 내용을 다영한 각도로 분석해서 결론과 대안을 제시하는 방법이다. 

물론 두괄식을 추천한다. 상대의 반응에 따라 추가로 설명이 가능하고 결론을 먼저 협상테이블에 올려 놓는 것이 상대방의 태도나 진의 파악이 쉽기 때문이다. 

사람을 추천할 때도 그 사란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순서가 중요하다. 비판과 칭찬을 함께 전할 때는 단점이나 미흡한 점을 먼저 언급한 뒤 좋은 점을 칭찬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 좋다. 대조효과가 진정성을 높여주고 나중에 전달된 칭찬이 더 기억되는 직전 효과가 동시에 작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설득의 테크닉은 단기간에는 효과적이지만 오래가진 못한다. 게다가 품질이나 컨텐츠가 보장되지 못하면 단명을 초래한다. 단골집의 비결은 음식의 양이 아니라 음식의 맛이다. 그리고 올바른 방식으로 거래해야 신뢰가 쌓일 것이다. 

이에 관한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심리학자 가겐(Kenneth J. Gergen)은 게임에 필요한 돈을 발려주고 되갚는 세 가지 조건에 대한 상대의 반응을 측정했다. 첫 번째 그룹은 “나한테 필요 없으니 안 갚아도 돼요.”라고 말해 무상조건을 달았다. 두 번쨰 그룹은 “지금 이걸 쓰시고 많이 따시면 갚으세요”라고 말해서 동등조건을 걸었다. 세 번째 그룹은 “빌려 드릴 테니 이자를 붙여서 갚으세요.”라고 부담스러운 조건을 내걸었다. 공짜로 주는 무상조건을 선호했을까? 아니였다. 사람들은 두 번쨰의 공평한 조건을 선호했다. 넘치는 호의는 부담스럽거나 진의가 의심되고 이자까지 받겠다는 조건은 인색하다고 생각했다. 

적당한 수준의 조건이 합리적인 거래의 바탕이 된다. 거래도 마찬가지다. 물건 값을 너무 깍으면 모자란 물건을 건네받을 수 있다. 반대로 가게 주인의 지나친 환대는 잘못된 것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부른다. 신뢰 관계는 동등하게 주고 받을 때 생긴다. 당당하게 상대에게 합리적인 댓가를 요구해라. 물론 그 이전에 당신의 실력이나 아이디어부터 살펴봐야겠지만. 

김시래 동국대·성균관대 광고홍보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