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정치인 향한 '뭉크의 절규'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입력일 2020-03-23 14:17 수정일 2020-03-23 14:19 발행일 2020-03-24 19면
인쇄아이콘
20200220010007237_1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노르웨이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를 생각하면 무의식적으로 그의 대표작 ‘절규’를 떠올리게 된다. 1893년에 그려진 ‘절규’는 절규하는 자신의 내면적인 고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뭉크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모순된 삶을 살았다. 그는 5세 때 어머니를 결핵으로 떠나보냈다. 그로부터 9년 후에는 누나 역시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여동생은 조현병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고 그의 남동생은 서른살의 젊은 나이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뭉크 역시 병약해 질병이 늘 따라다녔다. 그는 첫사랑의 실패 후 반복된 사람의 배신을 겪으며 여성을 부정하고 혐오하면서도 여러 여성의 사랑을 갈망했다.

뭉크의 내면적 고통과 모순으로 탄생한 ‘절규’는 ‘질병, 불안, 공포, 죽음, 고통’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내포한다. “질병과 광기, 죽음은 내 요람 위를 맴도는 악령이었다”는 그의 고백처럼 살아가는 내내 뭉크의 삶과 예술을 지배했다. 이러한 삶을 이끈 배경에는 아버지의 영향도 컸다. 의사이자 엄격한 기독교 신자였던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없었고 아이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모순된 행동을 여실히 드러냈다. 특히 죽어가는 가족 앞에서 오직 기도만 하는 광적인 아버지는 ‘광기의 씨앗’을 뭉크에게 대물림했다.

뭉크는 가족의 이른 죽음을 보며 ‘발에 물 적시지 않기, 장례식장 가지 않기, 운동하지 않기, 화초 가꾸지 않기’ 등과 같은 행동원칙을 세워 광적으로 죽음과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노력 덕분이었을까? 뭉크는 어린 시절 류머티즘으로 인한 고열과 천식에 시달린 병약한 몸으로도 그 무시무시한 스페인독감을 이겨냈다.

오늘날 우리의 삶도 뭉크와 다르지 않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라는 질병으로 인해 불안, 공포, 죽음, 고통이 일상을 뒤덮었고 급기야 질병과 죽음은 우리의 요람 위를 맴도는 악령이 됐다. 전세계적으로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를 보면서 우리의 일상은 절규로 점철됐고 ‘마스크 꼭 착용하기, 병원이나 장례식장 가지 않기,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운동하지 않기, 타인과 악수하지 않기, 혼자 밥 먹기’와 같은 광적인 행동원칙을 세워야 했다. 그러나 정작 책임감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부나 국회의원들은 모순된 행동들을 보이면서 국민들을 더욱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현실이 됐다.

광적인 행동원칙을 세워 스스로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 80세까지 장수한 뭉크처럼 우리도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기부 릴레이는 물론 의료진 파견, 구호세트 지원, 생활치료센터 제공 등 자발적인 시민의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병으로 죽어가는 가족 앞에서 오직 기도만 하는 뭉크의 아버지가 아님을 우리는 증명하고 있다.

절규(絶叫)의 사전적 의미는 ‘있는 힘을 다하여 절절하고 애타게 부르짖음’을 뜻한다. 현재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그러하다. 국민의 한표가 필요하신 분이라면 뭉크의 ‘절규’를 보고 공감 능력부터 키워야 하지 않을까.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