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광대의 몸짓으로 연출해라

김시래 정보경영학 박사·트렌드라이터
입력일 2020-03-16 14:12 수정일 2020-03-16 14:13 발행일 2020-03-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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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 정보경영학 박사·트렌드라이터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만든 조각과 사랑에 빠진다. 그는 조각상이 아내가 되는 것을 꿈꾼다. 신은 그의 헌신적 사랑에 감동해 조각상을 살아있는 여인으로 만들어 둘은 결혼에 이른다. 정신을 집중해 어떠한 것을 간절히 소망하면 불가능한 일도 실현된다는 것을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고 한다. 이른바 긍정의 힘이다. 반대로 ‘스티그마 효과(Stigma effect)’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평가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이 두 가지 심리 효과는 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기대감이 사람의 운명에 미치는 영향을 잘 설명해준다.

여기 두 장의 사진이 있다. 한 장은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다. 또 한 장은 같은 여학생인데 역도를 하고 있는 사진이다.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역도복을 입은 사진의 경우 교복을 입은 사진보다 주인공의 몸무게가 5㎏가량 더 무겁다고 대답했다. 교복을 입은 사진을 보고는 조금 통통하다고 했는데 역기를 드는 사진에선 나보다 무거울 것이란 반응을 보였다. 기대 조건이 달라지면 대상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이 결과는 같은 콘텐츠라고 해도 긍정적인 기대감을 조성할 수 있다면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의 관심을 정점으로 끌어 올린 후 솔루션을 제시하면 설득 효과가 극대화된다.

잠시 인류의 진화에 가속도를 붙인 스마트폰의 탄생 시점으로 돌아가보자. 그 날 청중들은 애플, 아니 스티브 잡스에게 3가지 제품을 기대하고 있었다. 성능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아이팟과 휴대전화와 인터넷이다. 그도 처음엔 그렇게 시작했다. “우리는 오늘 3가지 제품을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첫 번째 제품은 터치 제어부를 지닌 와이드스크린 아이팟입니다. 두 번째 제품은 혁신적인 휴대전화입니다. 세 번째 제품은 획기적인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기기입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그가 청중의 기대감을 증폭시킨 연출 방식이다. 그는 “아이팟, 휴대전화, 인터넷“을 반복해서 열거했다. 화면에선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 가지 제품이 보였다. 이 때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사람들은 기대감으로 침을 삼켰다. 세 가지 기기의 놀라운 기능과 성능을 하나하나 설명해 줄 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잡스는 청중들의 기대감을 다시 한번 폭발시켰다. 하나의 기기에 이 세 가지를 모두를 담았다고 알린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을 아이폰이라고 선언했다. 청중들은 탄성을 터트렸고 아이폰은 21세기를 뒤바꿀 신화에 등극했다.

이것이 프레젠테이션 천재의 기대감 연출법이다. 그는 기대감을 만들고 지우고 다시 끌어올렸다. 사람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한 것이다. 기대감으로 가득 찼던 그 쇼는 2007년에 벌어진 일이었는데 그 순간은 단 3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청중의 궁금증과 기대감을 끌어올리는 그의 연출력은 무대 연출가처럼 탁월하다. 아이팟 나노의 탄생을 알리는 프레젠테이션에는 청바지의 작은 주머니가 그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아이팟이 청바지의 큰 주머니에 필요한 제품이라면 그 주머니 위쪽에 붙어있는 작은 주머니를 위해 아이팟 나노가 탄생했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곤 카메라를 불러 그 작은 주머니로 손가락을 넣어 아이팟 나노를 꺼냈다. 그가 맥북에어를 세상에 소개한 방법도 기발했다. 맥북에어가 가볍고 슬림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렸을까? 서류 봉투에서 꺼냈다. 한방에 끝내 버린 것이다. 물론 설득의 핵심은 제안의 내용이다. 그러나 상대의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연극적 요소와 결합시키면 상대의 열광적인 반응과 흔쾌한 거래가 급물살을 탄다. 먹기 좋은 떡이 보기 좋은 찬합에 담긴다면 금상첨화다. 광대의 몸짓으로 그들을 압도해라.

김시래 정보경영학 박사·트렌드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