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은퇴대국, 여전히 용감한 남편들에게…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일 2020-03-04 14:21 수정일 2020-03-04 14:23 발행일 2020-03-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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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2020년은 인구학적으로 꽤 유의미하다. 70만을 웃도는 베이비부머(1955~63년생)의 선두세대부터 65세에 진입한다. 요컨대 초고령사회로 성큼성큼 다가선다는 의미다. 베이비부머란 타이틀답게 덩치는 크다. 매년 70만~80만명이 법적 고령인구(65세)로 편입된다. 지금까지의 늙어가는 속도·범위와는 비교되지 않는 넓고 빠른 변화다. 순식간에 젊음은 늙음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다. 준비상황은 실망스럽다. 정부도 가계도 당면이슈에 밀려 은퇴대국의 마중전략은 없다. 충격은 본인 몫이다. 각자도생이다. 와중에 남은 인생은 평균으로만 ±20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역시 급한 쪽은 남자다. 은퇴생활의 약자일 확률이 높아서다. 주지하듯 고령·수축사회는 모계사회다. 고성장기에 위력을 발휘했던 남성중심성은 설땅이 줄어든다. 하물며 은퇴남성은 더더욱 적자생존의 게임법칙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장기간 직장생활 위주로 살아온 회사인간에게 은퇴생활은 그 자체가 위협·도전적이다. 장기숙련의 전문성은 은퇴이후 발휘할 곳도 반기는 곳도 드물다. 전근대적·남성우월적인 주도권을 고집한다면 더 그렇다. 시대는 변했다. 그것도 획기적이다. 옛날만 떠올리기엔 여명이 길어졌다. 필요한 건 변신이다. 생존과 성장을 위한 유일방책이다.

실상은 힘들다. 은퇴남편은 모두에게 낯설고 어렵다. 그럼에도 품어안을 여유는 없다. 봐줄 수도 없거니와 챙겨줄 수도 없다. 자신보단 가족을 위해 돈 버는 기계로만 한평생 살아왔다 내뱉어본들 먹혀들 여지는 적다. 유효기간은 끝났다. 그땐 맞아도 지금은 다르다. 그럼에도 은퇴남편 대부분은 변신에 소극·회피적이다. 여전히 용감하고 아직도 굳건하다. 현역처럼 주장하고 왕년처럼 요구한다. 얻어지는 건 없다. 패색은 짙어지고 생활만 쪼여진다. 갈수록 황혼이혼·졸혼제안만 현실화될 따름이다. 결국 변해야 산다. 생각도 행동도 변신할 때 은퇴남편의 존재감·정합성이 강화된다.

주변엔 벌써 과락점수의 은퇴남편이 목격된다. 몇몇 풍경을 보자. 먼저는 삼식이다. 하루세끼 집에서만 먹는다. 본인이 해먹으면 천만다행. 퇴화생물답게 달라진 아내의 속내도 모른채 밥달라 요구한다. 대단히 용감하고 무모한 장면이다. 추잡하고 신경질적이거나 흔적도 잘 남긴다. 외출은 없고 웬만하면 집에서만 서식한다는 점도 포인트. 남겨진 가족에겐 신경에 거슬리고 불편한 상대다. 외향적인 캐릭터가 조심할 건 취미다. 일 없는 남편의 고가취미는 아내에겐 최악이다. 친구만 챙기는 은퇴남편도 마찬가지. 대체적으로는 엉망진창·독불장군으로 요약된다. 일상생활은 어리바리에 의사소통이 막히는 것도 일상다반사다. 그나마 폭력·불륜의 유죄확정 남편보단 낫다.

어려운 변신만큼 효과는 짭짤하다. 쪼개지지 않으니 금전부담을 덜고, 즐겁게 사니 신체·심리적인 건강유지도 가능해진다. 가화만사성이라고 외부활동도 원활해진다. 독거공포가 주니 생활만족은 저절로 커진다. 무엇보다 용감히 버티는 은퇴남편에게 던져질 ‘이가 서말’의 불행경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작은 변신의 큰 보답이다. 상황이 이런대도 변신에 주저하면 방법이 없다. 인생행복의 90%는 은퇴생활이 좌우한다. 공은 은퇴남편에게 넘어갔다. 이제 남은 건 선택뿐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