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기생충' 기생 마케팅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20-02-26 14:25 수정일 2020-02-26 14:26 발행일 2020-02-2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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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마치 월드컵 한국축구 경기와도 같았다.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에 이어 마지막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호명하는 그 순간까지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과 성취감을, 대한민국 사람들은 즐기고 또 즐겼다.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의 4관왕 쾌거는 대한민국의 숨은 저력과 함께 미래의 무한한 가능성을 남김없이 보여줬다. 남들 잔치로만 여겨졌던 아카데미, 칸 영화제에서 우리가 주인공이 되는 그 날이 현실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기생충’에 슬슬 기생하는 세력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정치권부터 볼썽사나운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기생충 관계자들을 초청한 청와대의 ‘짜파구리 오찬’도 정쟁의 도구거리가 되더니 여야 할 것 없이 기생충의 승리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유리하게 해석하며 봉준호를 이용한 각종 마케팅에 뛰어들었다. 한때는 블랙리스트에 봉준호를 올렸던 정파에서는 하루아침에 그를 영웅으로 찬양한다. 그의 고향 대구에 ‘봉준호 영화박물관’을 짓자는 얘기가 튀어나오더니 ‘봉준호 카페거리’ ‘봉준호 생가터’ ‘봉준호 동상’ 등등 그 시커먼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이는 일회성 이벤트들을 서슴지 않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이때다 싶어 손발이 오그라드는 전시행정을 여지없이 선보였다. 서울시는 아현동 슈퍼, 노량진 피자집 등 촬영지들을 ‘기생충 팸투어’로 엮었다. ‘괴물’ ‘살인의 추억’ 등 봉준호의 다른 영화 촬영 현장도 ‘봉보야지’(bong voyage)라는 기괴한 이름으로 투어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있다. 심지어 고양시와 전주시는 이미 철거한 세트장을 다시 지어서 관광 코스라고 내놓는 촌극마저 벌이고 있다. 어느 지역이 관광지로 개발되면 지역경제가 살아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 슈퍼 덕분에 관광객들의 폭주가 시작된 아현동 주민들은 혼잡, 소음 등의 피로를 호소함과 동시에 일반 대중에게 극빈층이 볼거리로 낙인찍힐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수상 소감이 무색하게 기생충에 기생하는 비창의적이고 비개인적인 집단적 광기가 서글프다. 갖가지 사연들이 복잡하게 얽힌 삶의 리얼리즘에 기대어 봉준호는 공생과 기생의 화두를 던지고 있지만 순수하게 영화를 감상하며 삶을 반추하려는 민초들과 달리 뭐라도 이용해먹으려는 윗분들(?)의 생각은 영화 주제와 달라도 한참 다르다. 자신의 정치적 계산만을 생각하며 ‘기생충’ 석권의 성과를 깎아내리려는 미국 대통령 트럼프만큼이나 한심한 노릇이다. 기생충에 잠시 기생해 단물을 빼먹을 것이 아니다. 정책을 다루는 세력일수록 기생충과 공생하면서 기생충의 기세를 이어나갈 각종 인프라를 고민해야 한다.

기생충 열풍은 여느 신드롬처럼 순식간에 지나갈 것이다. 코로나 역병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니 그 속도는 더 빨라질 듯하다. 기생충의 승리감에 지나치게 도취해 영화산업의 현주소를 망각할 것이 아니라 미래지향적 자세로 무장해 또 다른 승리를 향해 정진해야 한다. 제작-배급의 수직계열화를 비롯한 영화산업의 산적한 골칫거리들을 차근차근 해결해나가야 한다. 기생충의 기생은 끝났다. 이제 기생충과의 공생이 시작돼야 한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