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화성에서 온 여당, 금성에서 온 야당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입력일 2020-02-20 14:11 수정일 2020-02-20 14:12 발행일 2020-02-2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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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책으로 선정된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남녀의 차이를 화성과 금성이라는 각기 다른 행성에서 온 존재로 설정함으로써 서로의 차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이끌어 낸 글로벌 베스트셀러다. 각기 다른 행성 출신으로 생긴 것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지만 노력하면 그 차이도, 갈등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치는 ‘화성에서 온 여당, 금성에서 온 야당’으로 행성(지역) 출신을 더욱 부추기고 자신의 정책만 강조하면서 분열을 조작하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인의 의사소통 채널은 아돌프 히틀러 시절의 라디오만큼이나 강력하고 도발적이다. 유튜브나 페이스북을 비롯한 각종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자기가 팔로우하고 믿는 행성 사람들을 집단적 편견 속에 가둬 그들만의 진실을 주창해왔다. 그 덕분이었을까?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진실과 사실을 추구하기보다 사회적 지위를 추구하는 일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이미 나온 결과를 뒤돌아보며 논리적으로 합리화할 핑계를 찾는 데 주력한다. 이런 잘못된 인식을 ‘정당화론’(justificationism)이라고 한다. 이러한 패턴이 매년 반복되면서 정치인들은 오늘날 정보 흐름의 충격적인 속도에 도전받고 국민적 요구와 변화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그 결과 지식이 무엇인지를 착각하고 지식보다 자신과 당의 권리를 더 앞세우게 됐다.

간디는 단순한 정치인이자 종교인이 아니다. 특히 그에게 종교는 실험적인 추구의 대상이었지 무조건 숭상하는 절대적인 신앙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가 믿은 힌두교에서 인정하는 카스트제도가 잘못된 것임을 확신했을 때 간디는 가차 없이 이를 비판하고 그로 인한 손해와 적의를 당당하게 감수했다. 그는 종교만이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해 정직하게 회의하고 성찰했다. 이는 무엇이든 해보고 난 뒤 그것이 잘못이면 즉각 그것을 거부한다는 자유로운 이성적 실험정신에 의거한 것이다. 그는 정치든 종교든 어떤 기성 정책이나 행성에 맹종하지 않고 회의하는 실험정신으로 용기 있게 일을 처리해 가면서 그 결과에 따른 책임을 기꺼이 졌다. 안타깝지만 이 대목에서 대한민국 정치인을 비교할 사람이 없다.

하루가 다르게 펭수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펭수는 다양한 역발상을 시도해 다른 채널에 비해 상대적으로 화제성이 부족했던 EBS로 시청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또한 펭수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설정한 동물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방송 중에 EBS 사장 이름을 거침없이 부르거나 직장인들의 애환을 이야기하면서 지금까지 저연령층과 학생층에 머물렀던 EBS의 시청자 폭을 성인층으로 넓힐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자발적 소비자의 참여와 확산을 이끌어 낸 펭수의 인기는 장관보다도 국회의원보다도 인기가 많다. 오죽하면 펭수를 국회로 보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4·15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까지 국민의 권위보다는 당의 권리를 앞세우며 ‘화성에서 온 여당, 금성에서 온 야당’ 구조로는 어느 당도 정치인도 승리할 수 없다. 간디의 정책이나 출신에 절대로 맹종하지 않는 실험정신과 펭수의 공감능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화성에서 온 정치인, 금성에서 온 국민’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말이다.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