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정책에도 '사회학적 상상력'을

엄길청 글로벌 경영평론가
입력일 2020-02-17 14:12 수정일 2020-02-17 14:14 발행일 2020-02-1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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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엄길청 글로벌 경영평론가

1977년에 라이트 밀즈가 쓴 ‘the sociological imagination’이 ‘사회학적 상상력’이라는 책으로 소개됐다. 이 책의 역자 중 한명이 이해찬 전 총리다. 이 책은 “지식을 잘 다루는 지식장인(intellectual craftsman)은 항상 주장을 펼칠 때 전제와 한계를 분명히 해야 하며,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오류를 범하거나 불확실한 것의 개념화에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장인들이 만들어낸 이미지가 자칫 권력화 되어 사회적 관념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권위주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또 이런 사회적 편견이나 증오 희망 정열 등은 사회학적 이미지를 확산하고 이데올로기적 장비를 획득하고자 매스컴이나 SNS 같은 사회여론을 가지려는 경쟁으로 치닫기 쉽다고 지적했다.

정말 요즘이야 말로 누구나 ‘사회학적 상상력’을 높여야 할 시기다. 인간의 미래와 관련해 개인 삶의 생계수단들이 점점 사라지고, 갑자기 사회적 처방으로 넘어가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자리나 소득 노후 주택 교통 등 기존 생활수단들이 점점 국가 정책이나 사회적 공동체 등의 논의로 방향과 수준이 정해져 가고 있다. 아카데미상을 휩쓴 봉준호 감독의 작품도 주로 사회적 상상력을 담은 장르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는 페이소스나 페르소나, 샌티맨탈리즘 등 특정한 개인들의 사회적 상상력의 경향성이 담길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사회적 통합성이나 시대적 합리성에 하자가 생길 수 있다. 특히 경제문제는 또 다른 사회적 상상력 세계인 실용성이나 실리성, 이른바 ‘프래그마티즘’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주택문제에서 그런 징후를 발견한다, 최근 어느 공중파의 사회고발 프로그램은 서울의 아파트 가격상승이 수도권의 수원 등지로 넘어가는 일이 풍선효과나 버블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장기침체를 겪는 일본 도쿄주택의 근황을 조사해 논리화하는 것을 보았다. 이런 때 공리주의를 한번 생각하게 된다. 양적이든 질적이든 모두가 최대다수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공리주의다. 하지만 밴덤이 주장한 양적인 공리주의는 갈등이나 고통을 피하고 자연성을 추구하려는 반면에, 밀이 주장한 질적인 공리주의는 개별적으로 높고 고상한 모두의 고유한 행복을 찾고자 한다.

주택을 가격이나 규제에서 사회적 격차해소의 방안을 찾으려는 것은 양적인 방책이다. 그러나 주거가치관이 점점 더 실용성과 실리성을 추구하려는 경향인데, 정부가 이를 놓치면 소기의 정책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도시와 창조집단의 변화를 저술한 리처드 플로리다의 ‘도시와 창조계급’을 보면, 젊은 창조집단들은 점점 주요 글로벌도시로 모여들고 서로의 생각과 가치를 교환하며 산다. 그는 도시마다 첨단기술 수준과 쾌적함이 다르고 생활실익과 거주만족도가 다르다는 것을 수치로 제시했다.

우리 사회에는 질적으로 고상하고 높은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정치인들은 깊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좀 더 현실적인 방안으로 제안하자면, 임대주택만이 아닌 소유주택의 공공시장을 양성해 누구나 적당한 가격이나 적절한 품격에서 원하는 주택을 예매할 수 있는 구매시장기능을 공공적으로 제도화 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엄길청 글로벌 경영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