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시행 1년 실적 전무' 레몬법, 성과 내려면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 겸 김필수 자동차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0-02-06 14:56 수정일 2020-02-06 14:56 발행일 2020-02-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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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 겸 김필수 자동차연구소 소장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 겸 김필수 자동차연구소 소장

지난 1월부터 시작된 신차 교환·환불 프로그램 일명 ‘레몬법’의 실적이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소비자 보호를 위해 자동차 구입 후 1년 2만㎞ 내 중대 하자 2회, 일반 하자 3회가 발생하면 신차로 교환 또는 환불해주는 제도다. 취약했던 자동차 소비자 권리 제고의 기대를 가지고 시작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속 빈 강정이었다. 근본적으로 심각한 결격사유를 가지고 탄생했기 때문이다. 하자 판단 과정도 보완해야 하지만 자동차 제작사가 솔선수범해 소비자를 배려하고 보호하는 임무에 충실하지 않으면 쓸모 없는 규정이다.

작년 신차 교환 및 환불을 신청한 소비자는 81건으로 이 가운데 보상 범위를 벗어나거나 이미 합의해 종료된 사례는 25건, 진행은 19건, 나머지 32건은 접수 또는 대기다. 실제로 판정된 건수는 단 6건으로 각하는 4건, 2건은 화해다. 다시 말해 2건만 진행된 것이다. 실제 해당 제도를 통해 교환이나 환불된 건수는 0이다.

벤치마킹한 미국의 레몬법의 성공 배경을 잘 살펴봐야 한다. 크게 3가지를 언급하고 싶다.

먼저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자리 잡고 있다. 제작사가 조작이나 축소, 지연 등 소비자를 속이는 문제가 발견될 경우 천문학적인 벌금과 소비자 보상을 진행한다. 과거 일본 토요타는 1조원이 넘는 벌금을 부과 받기도 했다. 우리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없다. 수입사는 물론 국내 제작사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입법을 막아왔다. 덕분에 터무니 없이 적은 액수의 벌금을 내거나 아예 벌칙조항이 없는 경우오 많았다.

또 미국은 차량에 문제가 발생하면 결함 유무를 제작사가 입증해야 한다. 재판 과정에서 이 부분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면 결과에 관계없이 소비자와의 합의를 종용할 정도다. 우리는 반대다. 운전자가 자동차의 결함을 밝혀야 하는 구조라 입증이 불가능하다. 비전문가인 일반인이 3만개의 부품으로 조합된 자동차의 문제점을 입증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최근의 자동차는 자체가 전자제어 시스템으로 설계돼 있어 재연이 불가능해 입증은 더욱 힘들다. 자동차 급발진 사고로 인한 사망사고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운전자가 100% 패소하는 직접적인 이유다.

이 밖에도 미국은 차량에 복수의 문제가 발생하면 도로교통안전청(NHTSA) 등 공공기관이 직접 조사에 들어가기 때문에 제작사는 큰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관련 기관이 전무하다. 한국소비자원도 권고 정도로 그치고 강제적인 권한은 없다. 하소연할 곳이 없어 필자에게 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 외에도 다양한 문제점이 레몬법에 존재한다. 레몬법의 수준도 높여야 하지만 각각의 제작사를 만나 법 이행을 설득해야 하고, 신차 구입 시 계약서에 관련 내용을 명기해야 하는 것은 큰 한계다. 현재도 대부분의 회사들이 법 이행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굳이 나서지 않아도 벌칙조항과 불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형 레몬법은 시작 전부터 문제 투성이었던 결격법이다. 미비한 부분은 순차적으로 해결하고 진정성 있게 소비자 중심으로 제도를 준비하지 않는다면 사장될 수 밖에 없다. 이제 의미 없이 기대감만 높이는 전시행정법은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 겸 김필수 자동차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