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은퇴 없는 고령일자리 만들어야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일 2020-02-02 14:23 수정일 2020-02-02 14:25 발행일 2020-02-0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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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복지대국에선 은퇴준비가 거의 없다. 제도자체가 복지수요를 커버하니 적어도 금전이유로 노후생활이 힘들진 않다. 물론 대가가 따른다. 복지대국을 완성할 재원확보다. 세금과 공공보험료를 합한 국민부담률이 40~50%니 곳간걱정이 상대적으로 적다. 생애소득 이전효과에 따른 고부담·고복지의 완성이다. 공짜점심은 없듯 복지대국은 장기간에 걸쳐 숱한 시행착오 끝에 이런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냈다. 

한국은 어떨까? 갈수록 복지한계는 뚜렷해진다. 1층뿐인 연금구조는 대상이 적고 그나마 덜 받거나 못 받는다. 사회서비스·공적부조는 수혜문턱이 높다. 와중에 잠재적 복지수요층인 고령인구는 2020년부터 대폭 증가세다. 남은 건 실업안전판으로 위장한 창업도전뿐이다. ‘치킨창업→적자폐업’은 현실이다. 아니면 알바신세다. 품팔이에 비유되는 고령근로다. 그나마 70대면 이것도 끝이다. 환갑이후 푼돈의 월급(근로소득)으로 가까스로 버텼는데 칠순부터는 가족용돈(사적이전)에 기댈 수밖에 없다.

정부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는 게 정부재정의 곳간한계다. 더 내지 않았으니 더 받기 힘든 건 당연지사다. 떼쓰듯 애원하고 협박해본들 공존공멸을 앞당길 뿐이다.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만 떨어뜨린다. 복지수급은 제로섬이다. 수혜와 박탈은 상대적일뿐 합치면 제로다. 방법은 하나다.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노후대책의 근원비법은 일자리밖에 없다. 다른 건 부차적이다. 은퇴 없이 장기간 지속되는 일자리 앞에서는 어떤 노후대책도 후순위로 밀린다. 즉 한국복지의 최종목표도 일자리로 귀결된다. 일만 계속하면 누구든 행복노후가 가능하다.

현실은 어떨까? 어렵다. 고령근로를 가로막는 현실장벽은 두텁고 높다. 늙어도 일할 수밖에 없는 당위적 상황이지만 현실은 녹록찮다. 연약한 복지체계, 빈약한 은퇴준비, 괴로운 자녀세대 등은 불편한 노구를 팔라 재촉하건만 정작 고령근로의 기초토양은 황량하고 척박하다. 성공한 사용자·자영업자를 빼면 환갑잔치는 곧 소득단절을 뜻한다. 불러줄 곳, 의지할 곳 없는 잉여인생으로 전락해서다. 특히 남성가장의 은퇴공포가 구체적이다. 한평생 회사인간의 삶을 살아온 대가는 냉혹하다. 명함상실과 동시에 사회에선 망각된다. 집에선 투명인간의 영구복귀를 낯설게만 받아들인다. 맘 편한 시간·공간 없이 일상하루를, 아니 잔존인생을 방황하며 괴롭게 떠돌 뿐이다.

결국엔 정년연장이다. 문제는 실효여부다. 기업동의가 참 어렵다. 정년연장만큼 고용비용이 추가될 우려다. 선진국을 봐도 실효성은 의문이다. 일본은 비교적 제도가 안착됐지만, 부작용도 적잖다. 3대 선택카드(계속고용, 정년상향, 정년폐지) 중 대부분이 계속고용이다. 60세까지 기존처럼 일하되 연장이후엔 촉탁직이다. 비정규직이라 급여는 현역시절의 최대 절반이하다. 하물며 정년연장 결정시즌인 60세까지 버티기도 힘들다. 사전 명예퇴직이 더 많다. 냉혹한 현실이란 얘기다. 단절압박 없는 장기·안정적인 고령근로는 그만큼 어렵다. 그럼에도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한국현실에서 노후갈등을 회피하는 최선책은 고령근로뿐이다. 어렵지만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