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칼럼] 70세 사망법안이 가결된다면…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일 2019-12-29 15:26 수정일 2019-12-29 15:27 발행일 2019-12-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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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70세 사망법안이 가결됐다. 이로써 70세가 되면 30일 안에 사망해야 한다. 개인의사와는 무관하다. 70세 생일 이후 30일 이내에 몇 가지 안락사 방법 중 하나를 택하면 된다. 장수가 재정을 갉아먹고, 노인수발이 가족전체를 짓밟기에 불가피한 법률제정이란 설명이다. 법안통과 후 유예기간은 2년뿐이다. 루머지만 피할 방법은 있다. 연금을 포기하고 의료비를 제돈으로 내면 된다. 봉사활동을 해도 수명연장이 가능하다. 혼란은 확대되고 논란은 심화된다. 온 나라가 들썩거리는 건 당연지사다.

최근 출간된 ‘70세 사망법안, 가결’이란 책의 배경내용이다. 광장히 도발적이고 충격적인 주제를 다룬 소설인데, 일본서 출간직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지금도 회자되며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책은 발칙한 상상력의 픽션이지만, 뜯어보면 고령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정책과제로 구체화한 제안보고서에 가깝다. 소설형식을 빌린 사회학적인 다큐멘터리로 제격인 셈이다. 고령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갈등세태를 가족스토리로 구체화했기 때문이다. 또 방치하면 어떤 현실에 봉착할지도 담담히 경고한다. 해결방안도 공감된다.

요약하면 70세 사망법안은 시행직전 폐기된다. 실은 애초부터 실행의도가 없는, 가공된 허위전략이었다. 허망한 결론이되, 사망법안의 의도는 적어나마 달성됐기에 효과는 충분했다. 즉 고령사회의 제반문제를 지금처럼 방치하면 강제적인 70세 안락사 정책카드처럼 비상식·고강도의 충격요법밖에 없다는 점을 행간에 녹여냈다. 2년의 유예기간이 많은 이들에게 연금파탄·재정핍박·증세압박 등의 화두에 공감토록 유도했으며, 노동격차·최저임금 등 후속세대에의 배려필요도 공론화시켰다.

책은 일본배경이지만, 곧 한국사회와 동일시된다. 복지구조·가족주의처럼 유사기반이 많아서인지 낯설지 않을뿐더러 갈등양상조차 판박이에 가깝다. 책엔 2년 후 죽음이 예고된 침대신세의 할머니와 그 간병압박을 올곧이 견디는 며느리, 친구와 해외여행을 떠난 은퇴남편, 취업포기의 히키코모리 아들, 나가살던 비정규직의 딸 등이 등장한다. 재산상속에선 분가형제들의 이기주의도 생생하다. 극단적인 캐릭터지만, 우리에게도 적잖이 익숙한 현대가족의 데자뷔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결론은 따뜻하고 아름답다. 사망법안이 없어도 개혁정책이 시행될 공감계기를 만들어낸데다 서로에게 상처였던 가족도 적절한 역할분담으로 다시 행복해지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파탄·해체의 가족에게 화합·단결의 필요를 설득한 게 결국 가공의 70세 사망법안이었던 셈이다. 남과 나를 가르며 본인이해에만 함몰된 각자도생보다는 서로를 배려하는 지속가능한 상생협력이 가족·사회에 절실함을 설파했다. 이때 그 어렵던 복지·노동·재정개혁도 이뤄진다는 메시지를 안겨준다.

이쯤에서 자문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과연 괜찮은가? 이대로 갈려진채 아귀다툼만 반복한다면 그 끝은 뻔하다. 더 얻는 듯해도 다 잃는 하책보단 더 줄 때 더 얻는 상책을 찾아야 할 때다. 기울어진 운동장에 계속해 서있을 수는 없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개혁과제는 산적해있다. 70세 사망법안처럼 말도 안되는 아이디어가 불가피해지기 전에 행복총량을 늘리는 본격적인 개혁이 절실하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