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음원 사재기, 이참에 뿌리 뽑자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19-12-22 15:11 수정일 2019-12-22 15:13 발행일 2019-12-2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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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블락비의 박경이 SNS에 가수들 실명과 함께 제기한 음원 사재기 의혹이 명예훼손 등 법적 공방으로 번졌다. 세계 시장을 향해 나가는 K팝 위상을 거스르는 한국 가요계의 초라한 민낯이다. 급기야 마미손의 신곡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에서는 “기계를 어떻게 이기라는 말이냐. 내가 이세돌도 아니고”라는 신랄한 가사마저 등장했다. 음원 발표일 순위 차트의 실시간 그래프 분석이 등장하면서 차트의 신뢰성이 의심받고 가수들의 공든 탑이 무너지고 있다. 순수한 팬덤과 불법 사재기는 엄연히 구별된다. 그러나 막상 사재기의 실체는 잘 모르는 채 각종 풍문만 퍼지면서 정직한 가수들의 애꿎은 팬심만 흔들린다. 팬덤의 무덤을 파는 셈이다

음원 사재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원래 사재기의 원조는 출판계에서 비롯됐다. 최신 인기를 반영한 순위가 존재하는 음원 등 콘텐츠로 옮겨가게 됐다. 차트가 일종의 구매 가이드이기 때문이다. 매크로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해 댓글, 조회수를 조작하는 사재기는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인 ‘공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범죄에 해당한다. 아이디를 무단 도용해 스트리밍, 다운로드를 급격히 늘려 음원 순위를 끌어올리면서 소비자의 구매를 불공정하게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열심히 음원을 준비했는데 차트 진입도 못하는 상황은 가수들에게 끔찍하다. 차트에 잠시나마 이름을 올려야 가수로서의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케팅 등 그럴듯한 타이틀을 달고 불법행위를 자행하는 사재기 전문 업체들이 판치게 된 배경에는 황금만능 풍조, 결과지상주의가 한몫했다. 기획사가 사재기 업체를 동원할만한 자금만 있다면 별다른 음악성과 인기 없이도 차트를 임의로 조작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재기는 공정하게 경쟁하려는 많은 음악기획자들의 의지와 뮤지션의 순수한 창작열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주기적으로 사재기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음원기획사, 협회들은 대책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세미나, 간담회도 하고 고발도 한다. 당국도 처벌규정을 신설하고 전수조사를 통해 뭔가 강력한 조치를 취할 듯 덤벼든다. 그러나 매번 말만 요란하고 고발도 증거불충분으로 처리되곤 하니 또다시 사재기 논란이 독버섯처럼 고개를 드는 것이다.

물론 사재기의 단속 및 처벌은 쉽지 않다. 음원 플랫폼 사업자들이 음원 수익에 대한 로그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고 순위만 일방적으로 발표하기 때문이다. 음원 플랫폼도 개인정보 규제사항에 맞추다 보니 자료 공개에 한계는 있다.

최근 발의된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는 정부가 음원 플랫폼의 데이터를 조사할 수 있는 ‘현장 조사권’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행정편의주의, 음악산업의 위축이라는 비판 때문에 그 통과 여부는 미지수다. 아예 음원 차트를 폐지하거나 적어도 1시간 단위로 순위를 집계하는 실시간 순위 차트만이라도 폐지하자는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내부 고발을 유도하는 포상금제도 실시와 함께 불공정 요소가 상존하는 차트를 최소화하고 소비자 개인의 취향에 맞춰 다양한 음원을 추천하는 ‘플레이 리스트’로 흘러가야 할 것이다. 음원 사재기는 인기를 사기치는 것이다. 드루킹 댓글처럼 독버섯을 잘라내듯 뿌리 채 몽땅 잘라내야 한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