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머릿속 기억은 진실인가

김시래 정보경영학 박사·트렌드라이터
입력일 2019-12-11 14:20 수정일 2019-12-12 13:35 발행일 2019-12-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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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 정보경영학 박사·트렌드라이터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오랜동안 떨어져 산 모녀가 기억속에 감취진 진실을 찾아가는 따뜻한 위로의 이야기다. 영화속에서 인간의 기억은 믿을 것이 못된다는 대사가 반복된다. 맞다. 우리네 기억은 왜곡과 과장투성이다.소풍가는 날엔 늘 비가 왔을까? 그럴리 없다. 초등학교 6년 동안 한번쯤 내렸을 것이다. 오지 말라고 빌었건만 야속하게 비가 왔으니 그 날이 두고두고 강하게 남았다. 그러니 소풍날엔 늘 비가 왔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Elizabeth Loftus)교수는 기억의 정확성에 대해 실험했다. 신호등이 설치된 건널목을 무심코 지나온 피실험자에게 “좀 전에 본 교통신호등이 노란색이 아니었나요?”라고 물었다. 신호등이 노란색이라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 실제 신호등은 빨간색이였다. 그러나 피실험자들은 노란색이라고 대답했다. 텅 빈 거리에 복면 한 남자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여주고 “그 남자의 얼굴에 수염이 있었던 가요?”라고 묻자 피실험자들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복면을 하고 있는데 수염이 보일리가 만무하다. 기억은 사소한 정보나 조건의 개입에도 오염된다.

내가 살던 고향은 강원도 진부다. 내가 살던 집은 거기서 10리길을 걸어 들어간 호명이라는 깡촌이다. 우체국장을 하시던 아버지는 은퇴를 하시고 당시 부잣집 비지니스던 정미소를 차려 삼십호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산골마을로 들어가셨다. 학교를 가려면 다리 하나를 건너야했다. 이사오기 직전 목교를 철거하고 냇가를 가로질러 지어진 다리는 당시 보기드문 시멘트 다리였다. 서울로 이사 와서 가장 먼저 떠오른 고향의 그리움은 웅장했던 그 다리와 다리위에서 바라본 마을 정경이다. 구불구불 펼쳐진 물길은 아득했고 굴뚝연기 피어 오르는 마을은 푸근했다. 그러나 유년시절 고향의 추억처럼 왜곡된 감정덩어리가 어디 또 있으랴. 그곳을 떠난지 수 십년이 지나 아내와 두딸을 데리고 오대산 월정사를 가는 길에 잠깐 스쳐 지나간 적이 있다. 부모님이 운영하던 정미소는 간판마저 뜯겨져 어느 집의 낡은 창고가 되어 있었다. 마음속에 당당한 위용으로 자리 잡았던 다리는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만큼 좁고 볼품없었다.

누구나 첫사랑은 아름답고도 애절한 드라마다. 알고 보면 미숙하나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어설픈 수난사일 가능성이 높다. 기억속의 데이터나 정보는 당신이 편리한데로 편집되고 해석되어 저장된다.

자, 그러니 당신의 머릿속에 저장된 기억을 믿지 마라. 24시간 내내 당신과 함께 하는 가장 믿을만한 손 안의 친구를 꺼내 선명한 고화질의 사진과 동영상을 남겨라. 당신만의 해석을 가미한 몇 줄의 기록을 더해 또렸하게 남긴다면 금상첨화다. 우선 변질이나 왜곡의 염려가 없다. 차곡차곡 정리해주는 어마무시한 저장소도 있다. 알고 보면 이것이 소셜 미디어(SNS)다. 허위나 열등을 조장하고 타인의 인정을 구걸한다는 오명도 쏟아지지만 문명의 이기일수록 쓰는 사람 나름이다. 스마트폰은 기억의 저장소이고 생각의 발전소다. 지금 이 글도 사람좋은 후배가 선물한 블루투스 키보드위에 씩씩하게 세워진 아이폰이 친절하게 돕고 있다.

김시래 정보경영학 박사·트렌드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