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동 大기자의 자영업이야기] ‘소 귀에 경 읽기’

강창동 기자
입력일 2019-11-06 07:00 수정일 2020-01-29 13:25 발행일 2019-11-0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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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동 유통전문 大기자·경제학 박사

1997년 새해 벽두부터 재계와 금융권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한보철강을 필두로 삼미, 진로, 기아, 해태, 뉴코아 등 대기업 그룹이 잇따라 쓰러졌다.

이들 기업에 돈을 빌려주었던 금융권도 덩달아 휘청거렸다. 외신과 일부 국내 언론의 경고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정치권과 관료들은 귀를 닫았다.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은 튼튼하다”는 판박이 해명을 되풀이했다. 당시 정치권 수뇌부는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며 의기양양했다. 막상 환란이 터지자 일본계 자금이 맨 먼저 한국 시장을 떠나고, 한국 정부는 국제 금융시장의 ‘봉’이 됐다. 이듬해 벽두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 금융권에서 명퇴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 대부분은 자영업 시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났다. 이번에도 외국 언론들이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영국 유력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최근 ‘잃어버린 수 십년? 한국은 더 심각할 수 있다’는 기사를 통해 한국이 심각한 경제위기 직전 상황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한국이 위기에 몰린 것은 미·중 무역전쟁, 한·일 갈등과 같은 대외적 요인뿐만 아니라 소득주도성장, 법인세 인상 등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에 기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도 한국이 경제위기에 직면했다면서 일본의 장기불황을 답습할 위험성이 존재한다고 경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이 민간부문의 부채가 위험 수준에 근접한 가운데 국제 무역환경이 최악인 상황을 꼽았다.

IMF 환란 때는 기업의 방만한 차입 경영이 사태의 뇌관으로 지목됐다. 일시적인 외환 유동성의 위기였고 아시아에 국한된 위기였기에 세계 경기호황에 힘입어 금방 회복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지금의 위기는 구조적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수출·입, 소비, 물가, 금리, 성장률 등 경제 지표들이 일제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고, 저출산·고령화의 재앙은 벗어날 기미조차 없다. 후손들이 먹고 살아야 할 신성장동력은 꽃을 피우기는커녕 싹을 잘라버리는 토양이다. 수 십년간 규제의 벽을 겹겹이 쌓아놓은 탓이다.

가계부채 1556조원(2019년 2분기 현재) 가운데 자영업자들에게 빌려준 돈이 600조원 정도다. 이 가운데 407조원 정도가 금융기관 3곳 이상에서 대출받은 다중 채무로 집계된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 자영업자들이 맨 먼저 빚더미에 몰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박근혜 정부 때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 덕분에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직장인들도 삶이 팍팍하긴 마찬가지다. 기업들은 세금과 인력활용이 유연한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경제 쓰나미가 몰려오는 소리가 저 멀리서 들린다. 하지만 ‘소 귀에 경 읽기’는 그때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강창동 유통전문 大기자·경제학 박사 cdkang1988@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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