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칼럼] 은퇴는 없고 생활은 있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일 2019-10-27 15:02 수정일 2019-10-27 15:02 발행일 2019-10-2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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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초연결사회다. 구분은 있어도 단절은 없다. 사람인생도 그렇다. 어제·오늘·내일은 물 흐르듯 맞닿는다. 경계를 나눌 수도, 영역을 쪼갤 수도 없다. 시나브로 이어진다. 부지불식간 인생은 하나둘 완성되는 법이다. 다만 유독 은퇴시점만큼은 시선·인식이 다르다. 은퇴전후의 확고한 구분접근이 일상적이다. 은퇴이후는 뭔가 확 달라질 것이란 고정관념이 짙다.

그러나 틀렸다. 오늘 은퇴했다고 어제와 내일이 달라지진 않는다. 사람이 같기에 달라지는 건 없다. 일만 없을뿐 삶은 여전히 반복된다.

물론 은퇴준비는 필요하다. 문제는 지나친 공포와 초조함이다. 사회전체가 은퇴와 관련해선 꽤 유난스럽다. 준비하지 않으면 망할 것처럼 야단스럽다. ‘은퇴=준비’의 확고부동한 사회인식이다. 반면 대응전략은 천편일률적이다. 돈 준비다. 방향은 쌓아두고 쟁여두기다. 모으고 불리는 자산축적이 은퇴준비의 전부다. 주식·펀드든 부동산이든 그래서 은퇴준비는 투자로 상징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과유불급이랬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돈이 중요하나 전부일 수는 없다. 돈만 떠올리니 은퇴전후가 확연히 갈린다. 은퇴란 게 현역강판이니 근로소득의 단절신호로 해석된다. 은퇴이후의 빈곤압박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을 그만둬 입금이 안된다고 인생이 끝나진 않는다. 일이 없어도 삶은 있다. 삶은 은퇴했다고 바뀌지 않는다. 때문에 은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일이 없어질뿐 나머진 똑같다. 겁낼 까닭이 없다.

물론 돈은 다다익선이다. 근로소득이 사라지니 축적자산이 유일방책이다. 그렇다고 돈에 얽매여선 안 된다. 없는 돈 찾아다녀본들 채워질리 없다. 적으면 적은대로 살면 된다. 세간에 알려진 거액의 노후자금에 일희일비할 이유는 없다. 목표금액을 맞추려 무리할 까닭은 특히 없다. 얼마든 돈에 맞춰 살 수 있고, 또 살아야 한다. 중년이후의 투자실패는 복구가 불가능하단 점에서 신중한 게 좋다. 어쩌면 얼마나 준비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까가 노후준비의 제대로 된 고민이다.

은퇴와 현역은 연결된다. 노후생활과 현역생활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진 않는다. 은퇴이후가 완전히 새롭지도 않다. 빈곤·고립·유병의 노년기를 겁내지만, 현역인들 매한가지다. 청년·중년 모두의 생활이슈일 따름이다. 은퇴나 실직이나 똑같다. 관계단절 후의 외로움도 생애전체의 포괄문제다. 노년의 빈곤·고립·유병은 특별하지 않다. 따로 떼놓고 특별히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해선 안 된다. 노년은 현역의 연장선에 있다. 전혀 다른 출발은 없다. 은퇴했다고 맘과 몸이 달라지진 않는다.

필요한 건 균형적인 생애설계다. 즉 노후준비가 아닌 생활대응이 바람직하다. 삶의 균형을 일찌감치 맞춰두면 은퇴준비는 옅어진다. 요컨대 ‘Well Balanced Life’의 구축이다. 불확실한 미래이슈에 지배당하기보단 눈앞의 생활가치를 향상시키는 게 옳다. 노후와 현역은 결별하지 않는다. 즉 은퇴는 없고 생활은 있다. 생애전체를 즐겁고 뜻깊게 살면 그걸로 족하다. 수축사회와 감축경제에 들어섰다. 양적인 확장전략은 힘들어졌다. 노후준비도 마찬가지다. 불안 탓에 현실을 저당잡히면 하수다. 노후준비의 범용모델은 없다. 삶이 제각각이니 옷에 몸을 끼어맞춰선 곤란하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