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총성 울린 '악플과의 전쟁'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19-10-21 14:07 수정일 2019-10-21 14:09 발행일 2019-10-2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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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또 한번 안타까운 희생이 있었다. SM엔터테인먼트 걸그룹 에프엑스 출신 설리가 꽃다운 나이 25세로 이 세상의 모든 악플과 이별을 했다. “브래지어는 액세서리”라고 소견을 밝히는 등 그 누구보다도 당당했던 그녀였기에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대중의 충격은 크다. 최진실의 극단적 선택 이후 악플 사건이 터질 때마다 악플 방지에 대한 목소리는 높았지만 이번만큼은 일과성 소동에 그치지 않는다. 인터넷 실명제의 재도입 및 악플 처벌 강화를 위한 법 제정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가 연예인 악플에 대한 강경 대응책을 발표한 것을 비롯해 정치권의 법 발의도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설리의 본명에서 딴 ‘최진리’법 청원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설리가 악플의 밤을 지새우고 저 세상으로 가면서 이 세상에 전하려는 진리는 무엇일까? 가히 악플과의 전쟁은 시작됐다.

인터넷 실명제는 2007년 도입됐지만 2012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근거로 헌법재판소의 전원일치 위헌 결정에 따라 폐지됐다. 하지만 그 이후 한국사회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고 정치권에서 비롯된 극단적인 혐오, 분노를 부추키는 문화가 대중과 가장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연예계를 거쳐 페미니즘까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면서 악플러들에게 표현의 자유는 지나친 사치라는 비난이 뒤따랐다. 결국 악플의 대처 방안은 사이버공간상 표현의 자유에 대한 한계를 설정하는 작업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내재적으로 인격적 법익 등과 충돌을 예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 한계의 설정은 제로섬 게임이다.

악플 문제는 복잡한 원인으로 발생한다. 인간의 본성에 깊이 숨어있는 공격성 특히 ‘익명’이라는 방어막 때문에 극대화되는 폭력 성향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실명제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악플러에 대한 고소 및 처벌 강화만이 능사가 아니다. 혐오 표현이나 차별의 폐해에 대한 조기 교육, 지속적 홍보가 우선돼야 하며 사회적 불평등, 불만 해소를 통해 공동체적 유대감이 우선 확보돼야 한다. 이와 함께 미디어, 포털의 철저한 반성도 필요하다.

악플을 확대 재생산하는 장을 제공하는 미디어나 포털사이트가 책임의식을 통감하면서 공동으로 자정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광고수익과 직결되는 클릭수를 올리기 위해 연예인 악플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미디어, 포털의 폐습은 이제 끊어야 한다. 기자가 댓글 자체를 무시할 수 없지만 건전한 여론이 아닌 키보드 킬러의 악플을 취재원으로 활용한다면 제2의 최진실, 설리 사건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주로 여성 연예인들이 악플의 희생양이라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여성을 지나치게 ‘성적 대상화‘하는 세태는 속히 바뀌어야 하며 남성 우위의 관점을 방관하거나 부추키는 기성 언론, 나아가 여성을 내세운 성상품을 제작하는 연예기획사도 바뀌어야 한다.

최근 드루킹의 댓글조작 등 때문에 포털의 댓글 시스템을 폐지하자는 극단적 의견도 나오지만 댓글을 통한 여론 형성 및 표현의 자유 확보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다만 표현의 자유가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넘어설 수는 없다. 악플 비극은 중단돼야 한다. 악플 전쟁에서 전사하는 설리는 살리되 표현의 자유만이 능사라는 진리는 죽어야 한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