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조국 전쟁'에 잊고 있는 것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입력일 2019-10-13 11:34 수정일 2019-10-13 15:09 발행일 2019-10-1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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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눈만 뜨면 조국 장관 이야기다. 방송의 첫 머리와 신문의 1면은 조국 장관으로 도배된 지 이미 여러 달이다. 주말이나 휴일이면 산으로 들로 또는 영화관으로 발길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광화문으로 또는 서초동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남한과 북한으로 갈라진 이 땅은 이념에 따라 다시 좌와 우로 두 동강이 났다. 글로벌 경쟁 사회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경제 정책이 문제가 있다고 해서 펼쳐지는 광장 정치가 아니다. 우리 경제를 살려보자고 수백만 명이 모여 집회를 했다면 대한민국은 건강하고 미래는 밝다. 얼마 전 북미 실무 협상은 결렬되었다. 기대했던 북미 정상회담은 언제 개최될지 조차 불투명해졌다. 만약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면서 수백만 명이 광장으로 집결한다면 이 또한 명분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쪼개져 주말마다 그리고 휴일마다 수백만 명이 모인 결과로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정반대로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막대하다.

우선 경제 문제다. 양쪽으로 나뉘어 ‘조국’ 전쟁을 치르고 있는 동안에 우리 경제는 더욱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일자리 정책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해왔지만 정작 정년 세대들이 일할 곳은 마땅치 않다. 기업들은 채용에 눈을 돌려야 하지만 52시간 근로시간제와 최저임금으로 고용을 주저하고 있다. 나라 밖으로는 미중 무역전쟁, 한일 간 경제 전쟁으로 총성 없는 전쟁터에 고립무원 상태다. 자영업층은 이미 직격탄을 맞은 지 오래다. 정부의 소득주도정책은 국민 다수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있지만 어떻게 경로수정을 해야 할 지도 모르고 헤매고 있다. 이런 위중한 상황임에도 걱정하는 이는 많지 않아 보인다. 심각한 경제 무감각이다.

다음은 북핵 문제다. 경제 문제보다 더욱 심각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이후 국정 운영의 많은 에너지를 ‘북한의 비핵화’에 쏟아왔다. 북한 핵의 위협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까지 서두를 이유도 없다. 한반도에서 북한의 핵 보유와 실전 배치는 5000만의 생명과 직결된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운전자론’과 ‘촉진자론’ 등 온갖 수식어를 붙여가며 한반도 평화 노력을 기울여왔다.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 평창올림픽을 필두로 판문점과 평양에서 남북의 심리적 거리는 많이 좁혀졌다. 하지만 이 순간까지 ‘북한의 비핵화’는 실질적인 진전이 없다. 한국갤럽이 자체조사로 지난 8일과 10일 실시한 조사(전국1002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응답률17%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북한이 결국 핵을 포기할 것인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지’ 물어본 결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76%로 압도적이다. ‘결국 포기할 것’이라는 응답은 고작 16%에 불과했다. 정부나 정치권은 ‘북한의 비핵화’ 문제가 이처럼 심각한데도 정신줄을 놓고 있다. 정말로 치명적인 상태다.

‘조국’ 전쟁에서 가장 크게 잃고 있는 것은 리더십에 대한 신뢰 붕괴다. 경제 실패 가능성보다, 북핵 문제 악화보다 더 치명적이다. 대통령과 정치권은 ‘조국 전쟁’의 노예가 되어 국가의 미래는 나 몰라라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대와 30대가 ‘10년 후 한국사회’에서 지금의 대통령과 정치권을 향해 ‘내가 이러려고 대한국민 국민이 되었는가’라고 따져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할 지 아찔해진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