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누구나 하는 B급 은퇴설명서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일 2019-09-30 14:32 수정일 2019-09-30 14:33 발행일 2019-10-0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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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은퇴 없는 인생은 없다. 누구든 예외는 없다. 다만 준비는 예외적이다. 모두가 준비하는 건 아니다. 왜일까. 당장 눈앞의 호구지책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먹고 살기 바쁜데 내일까지 챙기기란 힘들다. 여유가 없다. 또 하나는 막막해서다. 뭐부터 해야 할지 갑갑하고 묵직하다. 대부분이 겪는 전략부재다. 가시적인 은퇴부담이 시작되는 50대면 공감할 수밖에 없다. 평생직장이 옅어지면서 빠르면 40대부터 은퇴숙제가 떠오른다. 남 일이 아니건만 내 일이기도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은퇴시장도 거든다. 잘못되지는 않았지만, 과도한 은퇴준비를 역설한다. 금융기관을 필두로 한 은퇴전략 운운이 그렇다. 잡음까진 아니라도 편견에 가깝다. 은퇴마케팅은 하나같이 ‘돈’만 강조한다. ‘은퇴준비=금전마련’은 공고한 등식이다. 옳고 맞다. 문제는 현실성이다. 우리 사회의 허리인 중산층도 은퇴를 위한 금전준비는 난제 중의 난제다. 하물며 넉넉치 못하다면 그림의 떡이다. 쟁여둘 돈이 얼마든 절대다수에겐 난공불락의 액수다.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한 현재를 담보로 미래까지 준비해둘 방법은 없다.

돈은 중요하다. 돈이 노후불안을 없애줄 유력한 수단임은 불문가지다. 다만 현실은 다르다. 냉엄해진 현실상황은 은퇴자금까지 남겨주지 않는다.

근로현장에서의 물러나라는 압박은 나날이 높아진다. 마약처럼 주어졌던 근로소득의 단절사태가 50대에 접어들면 현실적인 이슈가 된다. 애초부터 고용약자로 데뷔하는 후속세대는 더하다. 집조차 못 살 판에 안전판은 기대난망이다. 부모봉양·자녀양육의 샌드위치 신세면 노후준비는 사실상 강 건너 불 구경에 가깝다. 더욱이 실업대안인 창업도전은 본전치기도 힘들다. 현상유지는커녕 대부분 적자함정에 빠져 든다. 그런데도 은퇴준비는 돈만 부추긴다.

탄탄대로라도 내 길이 아니면 무용지물이다. 대로진입을 위해 노력하되, 현실적인 건 가시밭길을 헤쳐나갈 방법모색이다.

돈과 무관하게 본인이 할 수 있는 실질·체감적인 은퇴전략의 필요다. 요컨대 B급 은퇴설명서다. 불가능에 가까운 A급을 쫓느니 얼마든 가능한 자신만의 B급 전략이 한층 효과적이다. 돈에 꽂힌 외부시선의 A급보다는 자신에 맞춘 가능영역의 B급이 더 실효적이다. 처음부터 정상공략은 무리다. 베이스캠프를 조금씩 올려가며 조정하는 B급 은퇴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B급 은퇴설명서의 축은 3가지다. 돈 때문에 잊히고 가려진 건강, 사람, 그리고 본업이다. 바꿔 말해 각각 체력강화, 관계증진, 평생직업의 준비다. 사실상 돈보다 더 중요하게 챙겨야 할 관리대상이다. 3대 축만 잘 구축해도 돈 걱정에선 비켜설 수 있다. 모두 돈과 직결되는 보완·대안항목인 까닭이다. 반대로 3대 축이 무너지면 돈은 더 필요해진다. 병들고 소외되며, 일조차 없으면 고비용 노후생활은 불가피하다. 방법은 많다. 실천만이 관건이다. 2020년이면 베이비부머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1955년 생들이 65세로 진입한다. 이후 20년에 걸쳐 1700만 거대인구가 실질적인 은퇴연령에 들어선다. 지금 노후가 고민이면 가장 필요한 게 본인맞춤식 B급 은퇴설명서의 채택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