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마윈 그리고 빌 게이츠

이민환 인하대 교수
입력일 2019-10-06 15:11 수정일 2019-10-06 15:12 발행일 2019-10-0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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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환 교수(사이즈조절)
이민환 인하대 교수

지난 9월 10일 55세 생일날, 중국 벤처신화의 선구자였던 마윈이 자신이 설립한 알리바바그룹의 회장직에서 물러나 교육을 비롯한 자선사업에 전념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마윈이 은퇴를 선언한지 1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한때 중국정부의 압박에 의해 물러난 것이라는 음모론이 대두되기도 했지만 그와 관련된 후속 보도가 없는 것을 보면 본인의 의지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마윈은 과거 어느 모임에서 “알리바바에서 나는 늙었지만 내 인생에서는 매우 젊다. 70세까지 16년간 매우 대단한 일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퇴진은 이미 2013년 알리바바 CEO에서 물러났을 때 예견되는 일이었다. 그는 퇴임을 알리는 공개서한에서 “나는 여전히 젊은 새로운 일을 하기를 원한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교육으로 돌아가겠다”며 자신의 미래에 대한 방향을 제시했다.

빌 게이츠는 2008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 부인과 함께 빌·멀린다 게이츠재단을 설립해 자선과 교육사업을 하고 있다. 빌 게이츠는 2019년 현재 1000억 달러의 자산을 가진 세계 최고의 갑부이며 이미 자녀들에게 1000만 달러씩 물려주고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우연히 신문의 칼럼을 읽게 된 것을 계기로 자선사업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이 설사로 목숨을 잃는다는 뉴욕타임즈의 기사에 충격을 받고 전기와 물이 필요 없는 화장실 보급 사업을 시작으로 아프리카 지역의 소아마비 퇴치사업, HIV(에이즈 일으키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에 감염된 어린이에 대한 백신지원 등 개발도상국에 대한 빈곤과 질병퇴치에 적극 나섰고 무상으로 의료논문 연구자를 지원하고 있다.

빌·멀린더 게이츠재단 홈페이지는 그가 누누이 강조했던 ‘모든 생명은 동등한 가치가 있다(All lives have equal value)’는 슬로건으로 시작된다. 이 사업은 빌 게이츠와 친한 워런버핏으로부터 기부를 받으면서 더욱 확대돼 전 세계의 빈곤과 질병퇴치에 모든 힘을 쏟고 있다.

혹시 우리나라 기업가 중에도 기업이 아닌 개인의 자산을 던져 사회적으로 필요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기사가 있는지 검색해 보았으나 한 건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기사는 전부 외국의 미담일 뿐이었다.

국세통계조사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 기업의 기부금은 4조6471억원으로 2015년에 비해 감소했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거나 정치권의 억지 팔 비틀기에 마지못해 기부함으로써 생색내기에 안주하는 우리나라 기업가들에게 이러한 기대는 무리일까.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주기 위해 온갖 편법을 동원하는 우리나라 재벌들에게 요원한 이야기일까. 하긴 2017년 한 해 동안 미성년자에 증여된 재산이 1조원을 넘어서고 있다고 하니 자식, 손자들에 대한 사랑이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굳건한 것 같다.

어느 연구에 따르면 갑자기 부자가 된 로또형 부유층보다 힘들게 노력해서 축적한 자수성가형 부유층일수록 기부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자식사랑, 손자사랑은 이 정도에 그치고 세계 10위의 경제규모에 걸 맞는 부유층의 인식전환과 기부문화를 기대한다. 그나마 기업기부의 두 배나 되는 금액을 개인들이 기부했다고 하니 따뜻한 마음은 아직 살아있는 것 같아 조금은 위안이 된다.

이민환 인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