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국가부채 증가의 합리적 비합리성

신화숙 기자
입력일 2019-08-05 13:32 수정일 2019-08-05 13:35 발행일 2019-08-05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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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신 계명대학교 교수(경제학)

최근 추가경정예산안(이하 ‘추경’)에 대한 정치권의 합의가 도출되어, 수개월의 논쟁을 이끌었던 추경(약 5조 8,300억원 규모)이 여야 합의하에 국회를 통과했다. 추경을 통해 악화되는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확대재정정책의 한 방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정부 및 정치권은 경기하방 위험을 낮추고 일본의 수출규제 대응을 위한 재원이 필요하다고 진단한 것이다. 이번 추경에서 3조 2,000억 원이 적자 국채 발행으로 조달된 것이 특징적이다.

케인지안 경제이론에서는 재정지출확대를 통해 경제성장을 촉진시킬 수 있다고 전망하지만, 실제로는 구축효과에 의해 재정지출의 효과는 단기적으로 미미하게 나타나거나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것이 일반적 경제이론의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제이론의 차이를 증명하기 위한 재정지출의 성장효과를 분석한 많은 논문들은 단순한 결론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개별 국가의 특수한 상황이나 소득수준에 따라 재정지출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상이하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소득국가의 경우에는 사회 인프라 투자 등을 통해 경제성장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지만 고소득국가의 경우에는 오히려 경제성장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재정지출을 통해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생산적인 부문으로의 지출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동시에 자원 재분배에 따른 비용이 생산성효과보다 낮아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추경을 통한 경제성장의 견인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인지, 혹은 성장을 제고시키더라도 추경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채증가를 상쇄시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추경을 통한 경제성장의 효과는 확률적으로 100%가 아니지만 중앙정부의 국채 증가는 100% 명백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여기서 국가채무란 중앙정부의 국채, 차입금, 국고채무부담행위, 그리고 지방정부의 순채무를 합산한 것이다. 1997년 60.3조원(GDP대비11.4%) 이었던 국가채무가 2018년 708.2 조원(GDP대비39.5%)으로 약 11.8배 증가하였다. 이 기간 동안 국가채무의 증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정치적 수요를 포함한 공공프로그램의 급속한 확대가 주요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같은 기간 재정위기를 겪었던 남유럽 국가들(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을 포함한 적지 않은 국가에서도 국가채무가 증가해 왔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증가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호주와 스웨덴과 같은 국가는 오히려 국가채무가 감소하기도 하였다.

근년에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같은 국제기구에서는 국가재정법상 현금주의 국가채무 통계 외에 공공부문 부채에 대한 국제지침(PSDS)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기준에서는 발생주의 회계원칙에 국가채무 외에도 비영리공공기관의 부채를 포함시킬 것을 권고하고 있다. 즉 국가채무(D1)와 일반정부부채(D2)를 구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국제기구들은 정부가 보장할 수밖에 없는 비금융공기업 부채를 포함한 공공부문 부채(D3)도 요구하지만 이를 발표하는 국가는 많지 않다. 2018년 말 기준 우리나라의 일반정부 부채(D2)는 735.2조원, 공공부문 부채(D3) 1,044.6조원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금융공기업의 부채까지 합산된다면 그 규모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 이를 통칭하여 국가부채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국가부채의 증가에 대해서는 거시적 관점에서 관심이 높지만 미시적 관점에서 국가부채가 어떻게 발생하고 증가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현실이다. 정치권에서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국가 재정을 이용하여 대중의 지지를 얻고자 하는 유인이 있다. 특히 집권당의 경우에는 그러한 유인이 더욱 강하다. 때로는 특정 지지층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때로는 신규 지지층을 형성하기 위하여 다양한 명분으로 공공프로그램을 통해 재정지출을 확대하고자 한다. 이러한 재정지출은 정치권에서 선제적으로 추구하기도 하지만 특수이익집단(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개인의 집합체로서 전문성과 특수성을 바탕으로 한 영향력 있는 이익집단)에 포획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실제로 OECD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이익집단의 지대추구활동(rent-seeking activities)으로 규제가 생성되고 그로 인한 공공프로그램의 확대가 나타났다. 새로운 공공프로그램이 생성되거나 기존 공공프로그램 강화로 발생한 사회복지 지출의 증가는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정부가 조세수입 이상으로 과도한 공공프로그램을 운영하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재정적자로 국가부채는 증가한다. 현재의 재정적자는 미래세대에게 부담이 된다. 현직의 관료와 정치인들에게는 공공프로그램 확대를 통해 정치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편익이 발생하지만, 일반 국민들의 세금을 통해 공공프로그램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공공프로그램의 편익을 얻는 주체와 비용을 부담하는 주체가 일치하지 않으면 비효율이 발생하고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게 된다. 결국 이는 국가부채로 누적되는 것이다. 정부가 대중을 위해 다양한 공공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경제성장과 조세수입을 고려하여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 실제로 정치인을 비롯한 특수 이익집단의 지대추구 활동으로 정부의 재정지출이 사회적 최적수준을 넘어 나타나고는 한다. 일반 대중들의 합리적 무관심(rational ignorance) 속에 정치인과 특수 이익집단의 편익을 추구하는 규제와 공공프로그램이 양산되고 확대되는 것이다. 이 같은 결과는 정치인과 특수 이익집단의 관점에서 합리적이겠지만 국가 관점에서는 비합리적인 것이다. 이러한 합리적 비합리성(rational irrationality)은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다. 더욱이 요즘 같은 각자 도생하려는 분위기에서 개인 이익과 국가 이익이 복잡하게 상충되고 얽혀있을 때 어느 누구에게 개인의 이익 추구를 지양하고 국가의 이익을 우선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헌법적 토대 위에 재정준칙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김영신 계명대학교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