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황금알'과 '레알' 사이

엄길청 경기대 교수/글로벌경영평론가
입력일 2019-07-31 14:49 수정일 2019-07-31 14:50 발행일 2019-08-0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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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엄길청 경기대 교수/글로벌경영평론가

이솝 우화에 나오는 ‘황금 알’은 주기적으로 일확천금이 나오는 꿈 같은 가상수익의 기대치다. 아직도 투우사들이 성난 소에 칼을 들이대고 죽음 앞에서 하루하루 직업을 지키는 스페인에는 ‘진짜’라는 의미의 ‘레알(real)’이란 단어가 있다. 혼돈이 자심한 작금의 내외 경제사회 현상을 지켜보면서 이 두 단어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40년 가까이 경영분석가로 무역·투자현장에서, 대학 강단에서 일해 온 입장에서 지켜보는 최근 일련의 충격과 타격은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저렴한 대형할인점을 발달시켜온 미국이 가장 많은 저가 물건을 공급하는 중국에 관세 문턱을 넘으라면서 실제는 서서히 문을 닫고 있다. 한국의 선진화 기술 제품에 소리 없이 핵심소재를 묻어 팔던 일본은 느닷없이 반도체의 소재 공급을 끊겠다고 총리가 통보하고 나섰다. 영국도 영연방 인구가 유입되어 이미 15% 이상의 이민자 국민을 가지고 있건만, 이제 와 돌연 유럽연합에서 빠지겠다며 잉글랜드인 주도 아래 브렉시트를 결정했다.

글로벌 무역이나 글로벌 금융시장이나 다인종사회의 개방적인 자유로움은 이제껏 세계화를 주도하는 꿈 같은 단어들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 경제이론에 심취해 지금도 많은 후진국이나 개도국들이 원가 절감과 품질관리로 국제무역과 분업을 믿으며 돈을 빌려 투자하고 국민들을 훈련시키고 자연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곳간에서 인심이 나는 것인지, 2008년 미국과 유럽,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들은 더 이상 내면의 국부(national wealth) 추락의 치욕을 참기 어려운 지경에 다다른 형국이다. 협박도 몽니도 아니고, 투정이나 화풀이는 더욱 아니다. 돌연 냉정하고 혹독하게 후발국에 대한 태도가 변해가고 있다.

우리는 경제의 3분의 2 이상을 대외교역에 의존하는 대표적 국제경제 국가다. 외국 돈이 들어와 자본수지를 구성하는 금융개방 국가다. 지식기술제품과 문화상품을 만들어 세계적 기술문화국가로 더 올라가겠다는 미래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모두는 일정한 꿈과 계획, 약속 혹은 무형이거나 브랜드이거나 가상의 기대치들이다. 모두가 갑자기 ‘레알’을 주장하면 모두 손에서 놓아야 하는 신기루 같은 것들이기도 하다.

당면한 현실은 국가와 국민이 단합해 지혜롭게 헤쳐 나가야 하지만, 차제에 우리 안을 은밀히 잘 살펴볼 때다. 언제까지 우리는 수출로 돈을 벌 수 있을지, 남의 나라 돈으로 금융시장을 가동할 수 있을지, 외부성장이 주는 자산가치와 노동소득의 증가는 믿어도 되는지 냉정하게 짚어볼 시기다.

AI, 빅 데이터 등으로 구독경제가 뜨고 플랫폼이 호사로워 보이고 블록체인 같은 마술이 등장하지만 어디까지나 가상가치들이다. 우리는 5000만명의 인구와 3만 달러의 소득을 가진 나라이고, 웬만한 생산기술은 해결이 가능한 ‘작은 지구’다. 문제는 국민 개개인들이 자꾸 자신만의 고수익이나 국가의 공공복지로 ‘황금 알의 생계’를 의존하려는데 있다. 흉흉한 세상이 염려될수록 좀 더 ‘레알’로 돌아서는 엄청난 현실을 보자. 탐욕은 스스로 커진다(greed oft o’er reaches itself). 생계는 생각이 아니라 생사이다.

엄길청 경기대 교수/글로벌경영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