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칼럼] 주연과 조연

엄길청 경기대 교수/글로벌경영평론가
입력일 2019-07-01 14:51 수정일 2019-07-01 14:53 발행일 2019-07-0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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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경기대 교수/글로벌경영평론가

‘협상과 연출의 달인’ 트럼프가 마치 드라마 같은 정치와 외교로 하노이 회담 이후 교착상태의 한반도 긴장상황을 한 걸음 더 진전시키는 성과를 낳았다.

그는 좁고 어설픈 환경의 판문점 막사 사이를 혼자 걸어가 북한의 젊은 지도자 김정은을 먼저 기다림으로써 자신을 위해 출연한 그를 특별출연자로 대우했다. 아무리 미국 대통령 딸이라도 판문점 자유의 집 마당에서 제법 긴 시간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세계 외교안보 무대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미국 국무장관도 팔짱을 끼고 오래도록 서성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이날의 조연들이다.

점점 세상은 정보통신의 발달을 배경으로 마음만 먹으면 스스로 주연이 되어 직접 소통하고 연출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어느 일이든 숨겨진 조연들이 있다. 이날 남북미 정상의 비무장지대(DMZ) 깜짝 회동 드라마는 문재인 대통령이 사실상 조연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전후의 맥락으로 보아 전략상 조연을 자처한 인상이다.

이에 앞서 트럼프는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에 투자한 기업인들을 특별히 호명하고 심지어 불러 세워 대단한 감사를 표시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 두 명의 참석자가 오너 회장이 아닌 전문경영인이었다. (주)LG의 권영수 부회장과 CJ의 손경식 회장이다. 특히 LG 구광모 회장은 그룹의 지휘자로 등단하여 좋은 기회일 수도 있는데 권 부회장이 나왔다. 이런 광경 속에서 관점을 돌려보면, 세상의 모든 일은 구성원과 담당자·관리자가 있어왔는데, 점점 주연과 조연이 거의 다 어루만지면서 대개의 일들이 꾸며지는 모양새다.

우리 국민소득 추이를 보아도 5개 분위의 소득분포에서 상위 5분위와 4분위의 가구소득과 그 아래의 3, 2, 1분위의 가구소득 격차가 크다.

요즘 목도하는 세계 질서도 그렇다. 혹자는 G2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미국은 지금 중국에 옆자리를 내어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러시아,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모두 미국 옆자리에 가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은 더더욱 서구 선진국을 중심으로 주연과 조연의 역할로 새로운 판세를 만들어가는 형국이다. 지식·소프트 강국 미국이 주연이라면, 운영·소재기술의 독일과 한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은 조연이다. 요소기술의 네덜란드, 벨기에, 북유럽, 스위스, 이스라엘 등이 조연으로 보인다.

한국 주가지수(KOSPI)는 2000선을 지키고 있지만, 1000을 넘긴 것이 1989년이다. 우리 산업은 항상 주연과 조연을 교체하며 숨 가쁘게 달려왔다. 지금 이 시점에서도 시가총액 변동은 엄청난 차이가 난다. 근간에 시가총액이 급증하는 분야는 바이오헬스다. 그러나 급작스런 시총 증가에는 반드시 거품이 낀다. 요즘 이 분야의 제품개발에 오류가 종종 드러나고 있다. 투자자들은 유념하여 옥석을 가려야 하지만, 그렇다고 바이오헬스를 두려워하면 또 주가지수의 혼미함만 보고 변죽에서 지나치게 된다. 주식투자도 이젠 주연과 조연의 시대임을 인정할 때, 아직은 ICT가 주연이라면 바이오헬스, 연료전지, 미래자동차, 로봇 등의 새로운 조연들이 등장하는 상황으로 볼 수도 있다.

엄길청 경기대 교수/글로벌경영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