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용광로 갈등' 머리 맞대야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입력일 2019-06-24 14:30 수정일 2019-06-24 17:24 발행일 2019-06-25 23면
인쇄아이콘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지난 봄날, 97세의 노모가 낙상하셨다. 고관절이 골절됐다. 도립병원 의사는 수술이 어렵다고 했다. 평생 누워 지내시다 큰 변을 당할 지경이었다. 큰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수술을 왜 안 하십니까. 수술이후의 결과는 의사가 걱정할 일입니다.” 담당의사의 수술 권유는 단호했다. 환자의 의지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다르다는 판단이었다. 한 가닥 희망을 갖고 수술을 결정했다. 노모는 두 달 동안 두 번의 수술과 재활치료를 잘 견디셨다. 지금, 노모는 조금씩 걷게 되셨다. 주변에서는 기적이라고 했다. 봄날의 아찔했던 순간은 “위급한 병일수록 서너 곳의 병원을 다녀봐야 한다”는 체험으로 남았다.

올해 칠순을 맞은 직장 선배가 백발노인의 모습으로 모임에 나왔다. 2년 동안 지병을 견뎌냈단다. “죽고 사는 건 의사의 손에 달렸고, 병원도 잘 찾아가야 돼.” 60세를 넘긴 후배들은 선배의 조언을 귀담아들었다.

선배는 가슴이 아파 화장실에서 쓰러졌고, 인근 대학병원에서 혈전 용해시술을 했지만 뇌출혈로 진전됐다고 한다. 과한 시술 탓이었다. 반신이 마비되면서 다른 병원을 찾았더니 ‘심장 판박증’이라고 했단다. 가슴을 가르고 인공판막을 한 뒤 두 달 만에 활동할 수 있었단다. 2년 동안 헛고생했던 일만 생각을 하면 울화통이 터진다고 했다.

진단은 철강공장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설비가 정상 가동되지 못하거나 위험상황이 감지됐을 때 기술진들은 지식과 경험, 그리고 해외의 사례를 총동원하여 결론을 내린다. 특히 쇳물을 끓이는 고로나 제강설비의 휴동은 기업의 사활을 좌우하기 때문에 갖가지의 경우의 수를 동원하여 최종 결정을 내린다.

현대제철과 포스코는 최근 지자체로부터 고로의 가동중지 명령을 받았다. 공무원의 판단에 의해 ‘제철소의 심장’을 멈추라는 행정명령이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행정당국은 환경기준법에 따라 조사를 했을 것이다. 전문가의 진단을 통해 명백한 위법을 찾았을 것이다.

지자체는 세계철강협회에 블리더(고로 내부의 스팀 및 잔류가스밸브 안전장치) 개방이 옳으냐는 질의도 했단다. 돌아온 답변은 ‘세계적인 공통의 방식’이었다. 그럼에도 10일간 고로중단 명령을 내렸다. 지자체의 의지가 강해 보인다.

고로 가동 중지는 약 10조원의 경제손실을 가져온다. 고로가 10일간 중지되면 폐기해야 한다. 1기당 약 3조원을 쏟아부은 설비는 고물이 된다. 행정명령을 어긴다면 6000만원의 벌금을 내면 그만이다. 과연 현대제철과 포스코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짚고 넘을 일은 자주국방이다. 미국이 왜 232조를 발동했을까? 단순한 무역 장벽이 아니다. 팬타곤은 지구촌의 패권을 의식했고, 디펜딩을 수입 철강재로 원만히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이 트럼프에게 강하게 어필됐던 것이다. 남북 대치상황의 우리도 다를 바 없다.

누가 먼저 ‘신의 한 수’를 낼 것인가. 지자체는 명분만 생각하고, 고로메이커들은 실리만 주장해서는 일이 안 풀린다. 잘못한 것은 기업 스스로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환자와 의사, 기업과 시민, 기업과 환경단체는 서로 드러내고 도와야 한다. 그리고 견제하고 독려하는 일도 등한시해서는 안된다. 지자체와 고로메이커 모두에게 안주함을 버리고 역경을 선택했던 헤라클레스의 선택이 필요해 졌다.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