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덕후냐 환자냐… 게임중독 기준이 관건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19-06-09 14:46 수정일 2019-06-09 14:48 발행일 2019-06-1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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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블록격파, 갤러그, 테트리스…. 4050들에게도 친근했던 게임들이 오늘날 컴퓨터 등의 발달에 힘입어 스타크레프트, 리니지, LoL, 배틀그라운드 등 세계적으로 마니아층이 두터운 게임들을 탄생시켰다. 게임애호가들의 열렬한 성원 덕에 게임산업의 규모는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그 게임에 ‘중독’이라는 단어가 끼어들면서 게임 덕후들이 하루아침에 환자로 둔갑해버렸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최근 국제질병분류기호(ICD) 11차 개정안 질병 목록에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를 포함시키자 정신의학 등 의료계와 학부모들이 한편으로 뭉치고 게임업계가 극렬하게 반발하면서 요동치고 있다.

게임업계는 즉각 과학적 근거가 없며 WHO 결정의 국내 적용을 반대하고 나섰다. 우리나라의 신성장동력인 게임산업의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WHO에 이의를 제기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WHO 결정을 수용해 국내 도입 절차에 착수하고 있다. 의료계는 게임업계의 저차원적인 ‘과잉 반응’을 비판하면서 수많은 임상과 연구 사례들을 그 과학적 근거로 제시하며 공중보건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

미국 UC어바인 대학병원 의사 존 지아오는 게임 자체는 장애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 “게임중독이란 게임을 얼마나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게임이 건강이나 위생, 인간관계 등보다 우선하느냐의 문제”라고 설명한다. WHO는 게임 중독에 대해 ‘다른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하며 통제능력을 상실한 채 12개월 이상 게임을 지속하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는 게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도박, 알코올 등 모든 종류의 중독에 해당된다. 게임문화재단에서도 이미 2011년부터 ‘게임과몰입힐링센터’를 운영하면서 그 중독의 폐해를 공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 WHO 사태를 게임산업의 체질 개선의 계기로 활용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게임 중독 판단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애호와 중독은 구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알코올중독은 그 기준이 비교적 명확했다. 이에 알코올중독이 질병으로 분류됐어도 주류업계나 주점 등 관련 업계가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고 별다른 동요도 없었다. 중독의 판단기준 정립을 위해서는 관련 업계들과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충분한 토론과 협의를 거쳐 질병으로 평가하는 원인, 증상을 구체화해야 한다. 진작에 게임중독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조치가 필요했었지만 뒤늦게나마 정책적인 압박에 의해서라도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원론적으로는 무척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보이지만 게임 중독과 산업을 분리해서 판단하는 작업은 그리 단순하지도, 쉽지도 않다. 우선 대립당사자인 의료계와 게임업계는 더 유리한 기준 설정을 위해 이전투구할 것이다. 나아가 게임과 자식의 학습 성과를 연관지어 생각하는 학부모들에게 정치인들의 사리사욕 계산이 개입할 가능성도 우려스럽다. 결국 정부의 공평하고 객관적인 정책결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다만 게임산업이 의미있는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해 중독 기준의 설정에 유연성도 필요하다. 덕후를 함부로 환자로 몰아가면 덕후, 환자 모두 다 죽는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