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칼럼] IBM과 CGV의 마케팅 전략

정인호 GGL 리더십그룹 대표
입력일 2019-06-02 15:26 수정일 2019-06-02 15:26 발행일 2019-06-0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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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GGL 리더십그룹 대표

협상 전술 중 ‘문간에 발 들여 놓기 전술’(Foot in The Door)이라는 용어가 있다. 쉽게 표현하자면 ‘첫발 딛기 전술’이다. 이 전술은 작은 부탁을 들어준 뒤에 더 큰 부탁을 더 쉽게 들어주는 경향을 뜻한다. 반면 면전에서 문 닫기 기법은 지나치게 큰 부탁을 거절한 뒤 상대적으로 작은 부탁을 더 쉽게 들어주는 경향을 뜻한다. 과거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자신이 나오는 극장식 레스토랑을 광고하면서 “일단 한번 와 보시라니깐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2016년 3월 CGV가 좌석 차등제를 실시했다. 같은 시간, 같은 영화, 같은 상영관인데 좌석에 따라 가격이 달리 적용된다. 예를 들면 스크린과 가까운 쪽인 이코노미 존은 9000원, 중간인 스탠다드 존은 1만원, 뒤쪽인 프라임 존은 1만1000원인 식이다. 그렇다면 왜 CGV는 좌석 차등제를 실시했을까? 정말 고객을 위한 경제적 부담을 줄기 위한 상생전략이었을까?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조사에 의하면 점유 좌석당 약 430원의 가격 인상효과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전형적인 ‘첫발 딛기 전술’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코노미 존 9000원을 강조하는 것은 작은 부탁인 셈이다. 진입장벽을 낮춰 고객을 유입시킨 다음 스탠다드 존이나 프라임 존을 이용하게끔 만든다. 고객은 1000원울 할인받아 비굴한 기분으로 영화를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좌석 차등제는 행동경제학적 의미가 숨어 있다. 이코노미 존이 저렴하다고 해서 영화관을 찾았는데 기분은 별로다. 그럼에도 팝콘을 먹으면서 영화를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까지 찾아간 시간과 돈 그리고 영화관 점원에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지 않으면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비용으로 발생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매몰비용 오류’라고 한다.

협상에서는 어떻게 활용할까? 예를 들어 뉴타운 부지에 호텔 카지노 개장을 하고 싶은데 땅주인의 반대가 심하다. 이런 경우 거절하기 힘든 작은 요청(상생의 제안)으로 상대와 협상을 진행한 다음 차츰 요구 수준을 올리는 것이다. 예컨대 ‘조건부 임시 개장’을 제안하면서 딱 한발만 들여 놓는 거다. 이제 서로의 관계는 어느 정도 형성됐고 작은 요청의 협상사안들이 타결되면서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 돈이 투자됐다. 그리고 난 후 호텔 카지노 개장을 제안한다.

과거 IBM의 초기 사업 전략은 대형 컴퓨터인 메인 프레임을 팔고 유지 보수를 10%씩 책정해 받는 것이었다. 판매가 늘어날수록 10%의 유지보수 비용이 고정적으로 확보됐다. 왜냐하면 워낙 고가였기 때문에 새 컴퓨터를 사기보다 기존 컴퓨터 보수가 낫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 투자의 힘이 생기도록 한 것이다.

첫 발을 딛게 해서 사람들에게 시간, 돈, 노력 등을 투자하게 하면 뜻밖의 협상력이 생긴다. 그러나 이때 조심해야 될 것이 하나 있다. 서로 믿고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우호적 협상에서는 투자의 힘을 활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주 가는 단골의 가게에는 지나간 세월이 이미 투자의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정인호 GGL 리더십그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