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정치가들이 키우는 '체계적 위험'

엄길청 경기대 교수/글로벌경영평론가
입력일 2019-05-23 14:26 수정일 2019-05-23 14:29 발행일 2019-05-2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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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경기대 교수/글로벌경영평론가

투자시장에서 분석가로 활동해 오면서 늘 염려하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도 분산이 어려운 투자위험이 언제 어디서 닥치는가를 찾아내는 일이다. 이런 위험을 ‘체계적 위험’(systematic risk)이라고 부른다. 포트폴리오 투자위험은 체계적 위험과 비 체계적 위험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보통 비체계적 위험은 분산투자를 통해 그 위험을 낮추거나 조정한다.

그러나 동시적 불황이나 인플레이션, 금리변동, 유가파동 등은 시장참가자라면 누구에게나 닥치는 불가피한 체계적 위험이다. 우리는 과거 북한과의 긴장고조 사태 발발 때면 즉각 투자시장에 반영되곤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정치가들이 나타나 세계시장 판도를 흔들며 돌연히 체계적 위험을 발생시키고 금융활동과 산업 활동을 요동치게 한다. 국민을 단합시키고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서로 국가의 자긍심 속에서 사랑하게 하는 정치가나 사회지도자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독일의 침공으로 누란의 위기에 처한 영국을 뛰어난 리더십으로 하나로 모은 정치인은 윈스턴 처칠이다. 황무지의 덴마크를 열악한 자연환경과 싸워, 작지만 부강한 나라의 터전을 굳건히 다진 사회지도자는 달가스이다.

그러나 정국타개책으로 브랙시트라는 EU 탈퇴안건을 국민들 앞에 던져 세계를 뒤흔들게 한 일은 영국의 정치가들이 국민들에게 돌연히 내던진 ‘정치적 공(ball’)이다. 혜성처럼 나타난 프랑스의 젊은 대통령도 국민들을 이슈마다 여러 갈래로 가르는 아젠다를 하루가 멀다 하고 내놓는다. 집권한 지가 꽤 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평화롭고 협력적인 국제관계나 공동번영을 위한 리더십에는 정말 무관심하다.

연일 미국을 싸움닭으로 만드는 트럼프라는 프로 검투사가 만드는 글로벌 정치경제 환경은 단 하루도 평온한 날이 없다.

미국의 무역공세를 받는 중국 시진핑도 얼마 전 자국 우월주의에 빠져 “남의 나라 문명을 고치려 들면 재앙이 찾아올 것”이라는 엄포로 혁명투사 후예의 결기를 보이기도 했다. 정말 정치인들은 동족이나 이웃나라, 먼 나라를 막론하고 대립이나 갈등이나 분열이나 전쟁이 가져올 피폐한 삶의 질곡이나 피의 역사를 잊은 것인가.

요즘 한국의 정치현장은 온통 진흙탕이다. 내 뱉은 말마다 독기가 서려있고, 저열하고 치졸한 언사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 민생 고통에 대한 이해는 그저 말로만 하는 겉치레다. 정작 매일 자기들끼리도 싸우고, 상대방과도 싸우고 그저 치고 박고 있다.

오늘의 글로벌 경기둔화 배경으로 장단기 금리격차의 근접 내지는 역전을 우려하는 수익률곡선평탄화(flattening of yield curve) 현상을 들게 된다. 이미 미국에서 이런 현상이 발생해 삽시간에 여러 나라로 우려가 번지고 있다. 경기하강으로 장기금리가 내려가고 금리인상으로 단기금리가 오르면 생기는 일인데, 이로 인한 경기침체의 우려에 시급한 정책대응이 요구된다.

특히 우리는 지금 기업의 설비투자와 산업인프라 투자가 늘어야 한다. 체계적 위험이 현저히 낮아지는 정치사회적인 초당적인 협력이나 정국의 안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지금 저러고 있다. 도대체 저들은 누구인가.

엄길청 경기대 교수/글로벌경영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