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중년파산의 5가지 늪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일 2019-05-15 14:53 수정일 2019-05-15 14:54 발행일 2019-05-1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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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중년파산은 한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전체를 향한 엄중한 경고다. 가족의 위기이자 전체 세대를 병들게 한다. 성실히 살아도 그 끝에 고독사가 대기하는 현실, 이런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98%의 미래 중년파산’이란 책의 요약이다. 꽤 적나라하다. 한국보다 앞선 일본 사례 연구보고서다. 책에 따르면 고도성장·종신고용이 끝나면서 노후파산예비군, 즉 하류중년이 전체중년의 98%란다. 이들은 노년세대를 잃어버렸다는 점에서 ‘상실세대’로, 동시에 가족구성의 단절로 후손을 못 남기는 ‘멸종위기종’으로 불린다.

한국은 더 열악하다. 중년갈등이 정책적 고려의 대상이 되기는 요원하다. 청년·노년보다 순위가 밀리는 게 현실이다. 그나마 인지했다면 다행이다. 중년인구의 보호정책은 여태껏 없었으며, 앞으로도 고작해야 맛보기일 확률이 높다. 몸값대비 낮은 효용의 혐의를 받는 중년인구의 고용불안은 시대조류다. 뾰족한 수는 없다. 체제전환의 압박 속에 펼쳐진 달라진 시대환경을 개별적인 대응으로 이겨내기란 어렵다. 개별전략으로 충격은 줄여도 근본처방은 아니다. 구조적 모순을 놓치면 완치는 어렵다. 미세한 통증일 때 귀 기울여야 한다.

중년파산은 5가지 늪에서 출발한다. 이 늪의 원천봉쇄가 최선책이다. 고용위기, 가족위기, 심리위기, 질환위기, 사업위기 등이다. 이게 현실화되지 않도록 구조 자체의 개혁이 먼저다. 시간도, 비용도 당장은 어렵겠지만, 이게 해결돼야 중년위기는 방어된다.

우선은 제도적인 고용안정의 확보가 관건이다. 노·사·정과 함께 시민사회 등 다종다양의 이해관계가 얽혀 지난한 과제지만, 그렇다고 방치해선 곤란하다.중년위기를 복지정책으로 포용하고, 중년복지를 둘러싼 인식전환을 시도하는 게 좋다. 나머지 4대 위기도 전담·검토하면 충격저지가 가능하다.

국가와 사회에 중년위기를 올곧이 맡길 수는 없다. 아직은 희망사항에 가깝다. 그렇다면 스스로 안전망을 갖춰두는 게 시급하다. 고리타분한 얘기지만, 평생직업·재취업루트 등이 현실방책이다. 가족위기는 평시대비가 그나마 가능한 숙제다. 똑같은 붕괴위기지만, 감염과 방어는 가계마다 다르다. 부부·자녀·부모·형제 모두 평상시의 관계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운명을 가른다. 심리위기와 질환위기, 그리고 사업위기도 마찬가지다. 중년위기의 근본원인까진 몰라도 갈등발생 후 일정부분 충격감퇴를 시도할 수 있는 다양한 사전 예방조치가 급하다.

그럼에도 중년위기의 각자도생은 어렵다. 때문에 불행예고는 현실이슈다. 지금 한국사회의 화두는 노후준비다. 하지만 여기에 매몰되면 곤란하다. 노후준비도 중년위기를 극복할 때 비로소 통용된다. ‘환갑=은퇴’의 고정관념은 이제 없다. 환갑 이후라고 퇴화하지 않을뿐더러 감정·직감은 더 발달한다는 연구도 많다. 과장된 노년불안은 수정대상이다. 80%의 일본노인이 스스로 생활하는 것처럼 관건은 자립생활이다. 중년은 그 준비에 제격이다. 노년생활은 중년대응에서 시작된다. 느닷없는 노후파산은 없다. 어떤 식이든 중년파산의 경고 다음에 발생하는 법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