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물병·담요·양복 파는 스타트업

이해익 경영 컨설턴트
입력일 2019-05-13 14:47 수정일 2019-05-13 14:50 발행일 2019-05-1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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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익 경영 컨설턴트
이해익 경영 컨설턴트

첨단기술이 아니어도 간단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로 성장세가 두드러진 스타트업 스토리가 재미있다.

2010년 출시된 스웰(S’well)보틀은 스테인리스 물병이다. 기능만 보면 여느 물병이나 다름이 없다. 휴대용 물병 텀블러(tumbler)와 비슷한데 가격은 더 비싸다. 그런데도 성장세는 무섭다. 물병을 물병처럼 팔지 않고 핸드백처럼 판 것이 비결이다. 이 회사 창업자인 사라 커스는 일회용 패트병과 보온병을 대체하면서도 패셔너블한 물병을 떠올렸다. 무겁고 투박한 기존 보온병 대신 우윳병 디자인의 부드러운 곡선으로 고급스럽게 만들어 패션트렌드에 민감한 20~30대 젊은 여성들을 겨냥했다.

물병 만드는 회사인데 가장 먼저 뽑은 직원은 패션디자이너. 아티스트들과 콜라보레이션 제품도 주기적으로 출시한다.

이 회사는 마트에서 물병을 팔지 않는다. 고급 백화점에 매장을 내거나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해서 그 매장에서만 판매한다.

몇 해 전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에 담요 한 장을 사겠다고 순식간에 2만4000명이 몰렸다. 제품이 출시되면 가장 먼저 받아보겠다며 이들은 총 470만 달러(약 53억원)를 결제했다. 1장당 279달러(약 31만원)이다.

스타트업인 그래비티(Gravity)의 ‘중력담요(gravity blanket)’. 이 제품은 중력을 느낄 정도로 무거운 게 특징이다. 종류는 15파운드(6.8㎏), 20파운드(9㎏), 25파운드(11.3㎏) 등 3종이다. 내 몸무게의 10%에 가까운 제품을 선택하면 된다. 무겁기는 하지만 아늑하고 쾌적하다. 오리털이나 솜털대신 작은 고밀도 플라스틱 알갱이를 넣었다. 격자무늬로 박음직을 했기 때문에 알갱이가 이리저리 뭉치지 않는다.

이처럼 무거운 담요를 내놓은 이유는 꼭 끌어안는 포옹이 스트레스 해소에 그만이기 때문이다. 가장 근접한 압력이 내 몸무게의 10%라 한다.

포옹의 효과는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심장박동수를 안정시켜주고 면역력을 높여 주며 행복 호르몬인 도파민 분비를 촉진시킨다. 숙면도 돕는다.

남성들의 정장은 대체로 밋밋하다. 거의 똑같은 디자인에 색깔도 칙칙하다. 그런데 남성정장은 이래야만 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전 세계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양복이 있다. 2012년 설립된 네델란드 브랜드 ‘오포수트(OppoSuite)’. 이름부터 지루한 양복과는 정반대라는 의미다. 하늘색 정장에 튤립 무늬가 들어가거나 밝은 분홍색 플라밍고 새가 잔뜩 그려져서 마치 선물 포장같다.

누가 입을까 싶지만 톰 행크스, 애쉬턴 커쳐 등 헐리우드 스타들이 앞다퉈 입었다. 또 프로 야구단 시카고 컵스 감독과 선수들이 이 정장을 입고 원정길에 오르기도 했다. 2016년 매출은 약112억원. 전세계 50개국에서 연간 50만벌이 팔린다. 3명의 공동창업자는 베트남 배낭여행에서 현지의 알록달록한 천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유로2010’을 앞두고 네델란드 축구팀을 응원하기 위해 오렌지색 정장을 만들었는데 2000벌이 2주만에 팔려 나간 것이 시작이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기발한 스타트업이 속속 출현하면 좋겠다. 정부도 이런 기업들을 예리하게 발굴하고 화끈하게 지원해서 창업열기가 뜨거워지면 좋겠다. 혁신경제가 별 것인가.

이해익 경영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