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아는 나라’들의 재회

경기대 교수. 글로벌경영평론가
입력일 2019-04-28 16:17 수정일 2019-04-28 16:18 발행일 2019-04-2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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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경기대 교수. 글로벌경영평론가

동네 골목에서나 쓰던 ‘아는 형님’이란 단어가 이젠 방송국 프로그램의 타이틀이 될 정도로 세상사에서 일정한 유효성을 띠는 단어로 들어오고 있다. 느슨하고 비일상적인 관계에서 굳이 연관성을 찾을 때 부르는 낮은 인간관계의 하나인 ‘아는 사이’는 정형화된 국제사회의 관계에서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 등 서구국가들이 중심이 되어 세계주의의 가치관을 기반으로 국제사회를 하나로 묶으려고 시도한 많은 국제관계의 틀들이 적지 않았다. 교역문제에서는 우루과이라운드의 이행과 감시를 주요 기능으로 구축된 국제무역기구(WTO)의 출범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기존의 관세와 무역의 일반협정(GATT)를 대체해 1995년에 출범한 WTO는 다자간 무역협정의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요즘 글로벌사회의 지평은 이전의 역사적 연원에 기반한 국제관계들이 스멀스멀 되살아나는 양상들이 엿보인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영국연방 국가들이다. 무려 54개국에 이르는 영연방국가들은 그동안 2년에 한번 스포츠대회를 열 정도로 친선을 유지해 왔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원자재생산에 의존한 경제성장에 어려움이 닥치자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등이 서로 협력관계를 강화하려는 여러 현상들이 엿보이고 있다. 영국 국방장관인 게빈 윌리엄스는 최근 공식석상에서 영국군이 인도, 태평양 등에 군사기지를 만들고, 영국해군 항모인 퀸엘리자베스를 지중해, 중동, 태평양 등에도 파견할 것이라 천명했다.

북유럽에는 아주 오래된 상업도시들의 연맹이 있다. 14세기 중반부터 독일을 중심으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유럽국가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인근 상업도시간의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이 그것이다. 한 때는 100개가 넘는 도시들이 가입해 서로 자유로운 무역을 발전시킨 상인도시 동맹이다. 그런데 러시아가 차지하고 있던 발트 3개국의 자유세계 귀환을 계기로 이들 한자동맹 도시간의 경제활동이 점차 활기를 찾고 있다. 특히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의 경제는 이 도시들의 관계가 살아나면서 지금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지금 전방위적으로 무역을 하는 나라이다. 최근 들어선 동남아, 러시아, 인도 등으로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우리의 높은 기술력과 가격경쟁력 등이 주효한 성과들이지만, 언제까지 우리에게 안방일 수만은 없다. 시간이 흐르고 더 기술과 지식의 격차가 좁혀지면 결국은 더 가까운 나라들이 소위 ‘이전부터 잘 아는 사이’에서 더 활발하게 경제교류를 해 갈 것이다.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교역국가를 가진 나라이다. 과연 우리가 세계를 보는 눈과 태도가 어떠해야 할까. 국내 헤게모니에 함몰된 정치, 계층 간 지역 간 갈등의 이슈가 가득한 사회 속에서 이젠 세대 간의 불편한 기류까지 그 국민감정 가지들의 갈래가 적지 않다.

점점 소리 없이 근거리 국가 간에서 또는 역사의 뿌리에서 서로 더 친하게 지내려는 국제관계의 변화를 감지한다면, 온 인류가 소비자인 ‘수출 한국인’의 마음가짐은 세계인으로서의 책임감과 호방함과 유연함을 공고히 다져야 할 때이다.

경기대 교수. 글로벌경영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