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한국화'의 유령이 왔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일 2019-04-11 15:22 수정일 2019-04-11 15:23 발행일 2019-04-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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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한때 한국은 경제발전론의 모범사례였다. ‘한강의 기적’, ‘아시아의 4마리 용’이라 불리며 독보적인 성공모델을 구축했었다. 화려한 과거였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지금도 저개발국가에선 한국모델 따라하기가 적잖다. 한국이 일본을 벤치마킹한 것과 같다. 각고의 경제추격이 한국의 오늘을 만들었다. 다만 현시점에서 저개발국가는 심히 혼란스럽다. 잘나가던 한국이 지금은 요철천지인 까닭이다. 좇아야할지 말아야할지 헷갈린다. 지금 저개발국가들이 한국사회에 떠도는 성장이후의 갖가지 갈등이라는 유령에 주목하는 이유다. 

저개발국가가 염려하는 유령은 ‘한국화(Koreanization)’로 요약된다. 경제체력을 필두로 제도환경, 산업구조, 성장비중 등 사회·경제측면을 봤을 때 이들의 미래가 성장을 얼추 끝낸 일본일 여지는 거의 없다. 대신 낮은 대외신인도와 높은 수출의존도, 취약한 통화신뢰성 등에 직면한 한국사례와 더 맞다. 한국경제가 직면한 ‘지지부진’의 배경들이다. 따라서 한국이 저개발국가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지 반면교사가 될지는 한국에 달렸다. 어떤 처방이냐에 따라 승패는 엇갈린다. 인구문제 등 전대미문의 한국화를 극복하면 성공모델로 남겠지만, 탁상공론만 반복하면 실패의 교훈일 게 확실시된다.

한국화는 일본화(Japanization)에서 비롯된다. 일본화란 고도성장이 끝난 이후에 시작된 장기·복합불황을 말한다. 저성장·저물가·저금리·저고용 등 ‘저(低)의 공포’다. 무기력한 한국도 일본경로를 밟을 것이란 염려와 함께 자주 거론되는 키워드다. 한국화란 일본화에 한국적 취약성을 덧댄 의미다. 성장·인구·재정악재가 엇비슷해 보여도 세계 3위 경제대국 일본과 한참 모자란 한국은 다를 수밖에 없어서다. 일본조차 꽤 힘들었는데, 취약·의존성이 높은 한국은 불문가지라는 문제제기다.

한국화의 염려는 관념적이지 않다. 벌써 한국사회는 ‘저’(低)의 공포로 들어갔다. 성장은 꺾였고 실업은 일상사다. 와중에 집값 폭등은 스태그플레이션마저 떠올리게 한다. 그나마 수출지지로 버텨내지만, 내수경기는 얼어붙은 지 오래다. 충격완화의 안전판조차 빈약한데 수출마저 악화되면 살얼음판이 따로 없다. 한국화는 다양하다. 확인된 병명도 있고, 아직은 아니나 고질병으로 전이될 잠재적인 생채기도 많다. 그 원인도 복잡다단하다. 수면아래의 미시적인 수백·수천 개 톱니바퀴 모두가 한국화의 원인이자 결과다. 성장 때는 호재였으나 지금은 악재인 상황반전이 적잖다. 예전의 성공경험이 지금은 실패확률을 높이는 악재로 둔갑했다.

한국화의 유령은 실존한다. 기업·정부·가계 등을 감싸는 수많은 현실압박에서 모습은 다를지언정 유사논리의 한국화가 확인된다. 세대별로 나눠 삶의 현장에 끌어내리면 한국화의 이해는 한층 와닿는다. 청년은 교육·취업·연애·결혼·출산 등으로 피폐한 삶을 설명한다. 중·장년은 해고·야근·창업·집값·자녀 등의 단어로 절망을 읊조린다. 노인은 연금·의료·간병·독거·무직 등의 단어로 과락점수를 부여한다. 실존하는 유령을 부인해선 곤란하다. 유령과 함께 살기란 어렵다. 어떤 대응이든 유령은 이 사회에서 추방·제거하는 게 옳다. 결국 문제는 의지와 방법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