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예타 완화 'SOC 과잉' 경계해야

권혁동 서울과기대 교수
입력일 2019-04-10 14:58 수정일 2019-04-10 14:59 발행일 2019-04-1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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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동 서울과기대 교수
권혁동 서울과기대 교수

1999년에 도입된 ‘예비타당성 검증’(예타)은 총예산 500억원 이상, 국고 300억원 이상의 신규사업에 실시한다. 투자 여부와 금액에 대해 판단의 기준을 제공한다. 예외조항을 두었다. 국가안보, 인건비, 국무회의 의결사항 등에 대한 투자는 예타를 수행하지 않는다. 투자수요는 있지만 시급성이나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사업이 주된 대상이다. 국가 인프라 시설 구축, 연구개발 투자 등에 많이 적용됐다. 

예타는 미래 투자효과가 불투명한 부분에 대해 투자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예산 절감과 효율적인 투자에 크게 기여했다. 예산을 받아가는 쪽에서는 이 제도에 대해서 별 말이 없지만, 탈락하는 쪽에서는 불만이 크다. 비난과 변경 요구가 빗발친 이유다. 특히 지역에 많은 건설 투자를 해달라는 목소리가 높아 이번에 제도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학생들에게 시험문제가 너무 어려우니 출제와 채점방식을 바꿔달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논리다.

그래서 예타 조사 방식을 변경해 지방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은 경제성이 낮더라도 투자하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예타 방식을 바꾸더라도 총 재원의 지출에는 변동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방식이 완화되면 아무래도 지출이 많아지는 경향을 피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SOC 건설이 많이 진행돼 예산 투입이 줄어드는 추세다. 단기 경기와 고용부양 효과가 높기에 건설투자를 늘리는 것은 역대 정부가 추진하던 방식이다. 국내의 도로, 항만, 공항, 철도 등이 어느 정도 성숙되어 과잉투자된 부분도 있는 만큼, 방식을 수정하더라도 실제 예타 운용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예타에서는 사업신청을 하면 그 사업에 대해 비용 대비 편익을 조사하는 구조이다. 수요 제기에 따른 보텀업(Bottom-up) 방식이다. 지자체나 부처가 개별사업을 발굴해 예산을 신청한다. 예산 기획안이 부풀려져 경제성의 지표인 비용편익비율이 낮게 나와 예타 과정에서 사업범위를 축소조정, 경제성을 높이는 경우가 실무과정에서는 허다하다.

국가의 SOC 투자는 전국적으로 기본 플랜을 세우고 이에 수반되는 상세 계획을 연차적으로 수립하는 톱 다운(Top-Down) 방식이 절실하다. 중기 계획을 정밀하게 작성하고 이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해서 투자하면 된다. 지방의 인구는 줄고 있으며, 고속철도 건설로 이동시간이 줄었다. 미래 환경은 급격히 바뀐다. 환경이 바뀌면 경제성도 바뀐다. 경제성은 아주 중요한 지표이다. 이를 무시하고 사업 심의를 하게 되면 합리적인 투자 근거를 잃어버린다. 목소리가 크거나 정치적인 비중이 높다고 해서 우리 국토의 전체적인 균형발전 계획을 무시하고 개별적으로 진행한다면 재정낭비의 우려가 클 수 밖에 없다.

수요가 턱없이 부족한 지방공항을 과잉 건설하는 잘못을 더 이상 저질러서는 안된다. 시골 국도를 잘 만들어 놓고도, 다니는 차가 별로 없어 벼·고추를 말리는데 한 차선을 쓰는 낭비가 일어나서도 안된다. 사람이 거의 없는 벽지에 정부 출연 연구소를 만들어 연구개발(R&D) 환경을 황폐화 시키고, 지역 경제와 고용에도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실수가 되풀이 돼서도 안될 것이다.

권혁동 서울과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