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유포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19-04-04 15:05 수정일 2019-04-04 15:09 발행일 2019-04-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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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섹스에는 거짓말만 뒤따를까? 아니다. 비디오 역시 단골손님이다. 잘 나가는 강남 클럽의 평범한 폭행사건은 나비효과였다. 클럽 손님과 업소 측 관리인력의 물리적 충돌은 빅뱅 멤버이자 클럽의 운영진으로 알려진 승리(본명 이승현)의 성매매 알선, 마약 혐의와 슈퍼스타K 출신 정준영의 성관계 불법촬영 및 유포로 불거졌다. 심지어 경찰 유착, 내기골프 사태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였다. 1989년 아카데미상을 휩쓴 동명 타이틀 영화처럼 인간군상의 모든 잡다한 욕망과 사회의 온갖 비리, 의혹의 결정체다. 국내 미디어는 물론 CNN, BBC 등 외신들도 K-팝의 추악한 뒷모습을 앞다퉈 보도하면서 방탄소년단이 어렵사리 일구어낸 세계적 한류 열풍에 적신호가 켜졌다.

해외에서도 톱스타의 섹스 스캔들은 수사당국이 수시로 군침흘리는 재료이자 타블로이드의 먹잇감이다. 1990년대부터 흑인음악계를 접수한 알 켈리(R.Kelly)는 ‘아이 빌리브 아이 캔 플라이’(I believe I can fly) 등 무수한 히트곡들로 장르와 지역을 초월해 7500만장 이상의 음반판매량를 자랑했다. 하지만 그의 관능적 음악처럼 알켈리의 성생활은 지저분했다. 그는 2002년 미성년 여성들과의 변태 성관계가 담긴 동영상이 발각되면서 시카고 검찰에 의해 14개 에 달하는 아동성범죄 혐의들로 기소됐다. 알 켈리는 동영상 속 남자가 자신과 비슷한 외모의 남동생이라면서 완강하게 범죄를 부인했고, 어찌된 영문인지 재판에서 피해자들은 증언을 거부했다.

결국 2008년 알 켈리는 극적으로 무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그렇게 그는 무죄 방면을 비난하는 여론의 집중포화 속에서도 슬그머니 다시 음악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알 켈리의 소속 음반회사 관계자들이 그의 성범죄를 잘 알면서도 묵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가 벌어들인 천문학적인 음반 판매수익 때문에 고의로 이를 방치 또는 사실상 방조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미국 음반계의 도덕성에 커다란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우리나라 공영 지상파 방송국을 포함해 많은 프로그램들이 승리, 정준영의 비행들에 면죄부를 부여했다는 비난이 묘하게 오버랩되는 사건이다. 승츠비, 황금폰, 경찰청장 베프 드립은 어쩌면 이 사회 어른들의 부질없는 힘 자랑과 그보다 더 허무한 시청률, 점유율 압박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2018년 미투운동은 ‘#MuteRKelly’라는 태그를 퍼뜨리며 그의 퇴출을 요구했다. 세계 최대 스트리밍업체 스포티파이가 2018년 알 켈리의 음원 서비스 중단을 선언했고, 애플뮤직 등 유수의 음원 유통업체도 미국 내 알 켈리 신곡 제공을 거부했다. 미국 케이블방송국 라이프타임이 2019년 1월 방송한 다큐 ‘서바이빙 알켈리’는 6회에 걸쳐 그의 감춰진 범죄사실과 무죄 판결의 부당성을 대대적으로 폭로했다.

우리 사회도 더 이상 그 옛날 비디오 시절에 머물러 있지 않다. 작년부터 대한민국에 불어닥친 여성인권 신장, 페미니즘과 맞물려 이번 사건은 다른 성추문들과 함께 기억해야 할 상처와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K-팝의 화려한 샴페인 뒤에는 참을인(忍)과 윤리, 책임도 따라온다. 섹스와 거짓말에 대해서는 비디오가 언젠가 심판하니까.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