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이젠 '성장의 품격' 논하자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일 2019-02-14 15:07 수정일 2019-02-14 17:19 발행일 2019-02-1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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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한국사회의 불행전염은 위기상황이다. 양적인 성장지표만큼 질적인 불행지표가 넘친다. ‘행복 없는 성장’의 끝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는 이미 상식수준이다. 먹고살만하다지만, 극한 선택도 많다. 경제발전에도 실업률·자살률은 고공행진이고, ‘중산층→서민층’은 양산된다. 축적된 대자본은 낙수효과 없이 독점으로 연결되고, 출생격차는 교육격차과 희망격차로 직결된다. 정부의 존재이유는 희박해진다. 이기적 각자도생 말고는 기댈 대가 없으니 남녀노소·세대불문 ‘내 것만 더 챙기는 게’ 유일무이의 해법이다. 

현대경제학의 걸작인 GDP는 설명력을 다했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선 이를 대체할 새로운 지향과 기준이 절실하다. 수명이 다된 GDP를 계속해 고집하면 제아무리 양적성장이 이뤄진들(아쉽게도 양적성장도 힘들어졌다) 행복품질은 좋아지기 어렵다. GDP의 총량개념에 국민행복은 반영되지 않는다. 나쁜 성장은 재검토 대상이다. 전통적인 경제이론 중 설명력이 유효한 건 생각보다 적다. 갈수록 이론궤도를 벗어난다. 시대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과거유물에 천착한 미래지도는 한국사회의 품격저하와 직결된다.

물론 성장은 필수다. 다만 GDP 같은 양적성장만 추구하는 경로는 재검토가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경제성장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양적성장 일변도의 케케묵은 과거모델을, 그것도 설명력·정합성마저 훼손된 과거잣대를 시대상황이 급변한 지금껏 추종하는 건 잘못됐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 했다. 전체 국민의 후생을 극대화할 새로운 성장가치가 필요하다. 격에 맞는 성장모델의 채택 필요다. 황금만능은 황금시대에 통할뿐이다. 이젠 달라졌다. ‘성장≠행복’의 정황증거가 상당하다. GDP가 잉태한 공업화·도시화·자본화는 ‘순기능 < 역기능’의 기로에 섰다. 성장의 재검토는 ‘고도성장→감축성장’의 패러다임 변화압박이 한창인 지금이야말로 가장 시의적절한 고민거리다.

성장은 사람을 버렸다. 적잖은 수가 성장의 노예로 전락했다. GDP로 표현되는 양적숫자엔 사람과 행복이 빠졌다. 삶의 질과 직결되는 기본권이 보장된 인간다운 품격은 GDP의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범죄자가 많아 교도소를 더 지어도 GDP는 올라갔다. 인명살상의 전쟁수요·재건투자도 GDP엔 플러스였다. 요컨대 도둑이 들어도, 집이 불타도 GDP는 오른다. GDP는 덧셈이지 뺄셈이 아니다. 불행과 절망을 빼지 않고 더하는데도 GDP가 올랐으니 좋다는 식의 성장방식은 곤란하다. 중국의 억만장자 2명은 울면 울었지 웃을 수는 없다. 이들의 품격은 땅에 떨어졌다. 얻은 건 무의미한 GDP뿐이다. 성장이 멈춰선 지금 생활품질과 사람존중의 질적인 성장가치가 필요한 이유다.

성장을 둘러싼 고민은 양에서 질로 전환되는 게 바람직하다. GDP가 급증했음에도 왜 국민행복은 피폐한지 그 블랙박스를 해체·분석해야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은 보장된다. 절대빈곤이 해소됐음에도 절대불행이 회자되는 건 비정상·비합리적이다. ‘더, 더, 더’를 외치는 시대는 종료됐다. 사람을 챙기고, 행복을 따지는 품격 있는 성장모델만이 구시대의 유물이자 신시대의 장벽인 GDP지상주의를 넘어설 유력한 대안일 수밖에 없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