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가화만사흥(興)이 바로 신성장동력

이해익 경영 컨설턴트
입력일 2019-01-17 07:58 수정일 2019-01-17 09:05 발행일 2019-01-1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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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년 전통의 중국기업 ‘이금기’(李錦記)의 황당한 얘기다. 1888년 중국 광둥(廣東)성 주하이(珠海)에 허름한 식당 하나가 있었다. 어민들에게 간단한 요깃거리를 내놓았다. 부업으로 굴을 끓여 즙을 만들어 팔았다. 굴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센 불에 굴을 올려놓고 깜빡 잊었다. 그런 바람에 굴즙이 졸아서 눌어붙었다. 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진한 갈색으로 변한 진득한 굴즙이 기막힌 향을 풍겼다. 감칠맛도 일품이었다. 중국요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굴소스는 이렇게 발명됐다.

창업자의 이름은 리캄성(李錦裳).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회사이름을 ‘이금기’(李錦記·LeeKumKee)로 지었다. 이렇게 탄생한 식품회사 이금기는 세계의 굴소스와 두반장 그리고 해선장 등의 시장을 석권하면서 이금기그룹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금은 3대인 90세의 리만탓(李文達) 명예회장이 아직도 활동하고 있다.

1902년 주하이 가게에 ‘큰 불’이 났다. 차제에 마카오로 옮겨 새로 시작했다. 굴소스가 맛있다는 소문이 홍콩까지 퍼졌다. 고객수요가 폭증했다. 1932년 아예 본사를 홍콩으로 옮겼다. 홍콩을 본거지로 옮긴 덕에 이금기는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었다. 모두 주하이의 ‘큰 불’ 덕(?)이었다. 그러나 이금기의 비약적인 발전은 ‘큰 불’ 덕만은 아니었다.

리만탓 명예회장의 ‘사리급인’(思利及人)이라는 경영철학은 “이익을 생각할 때는 그것이 남에게도 미치도록 하라”는 뜻이다.

바로 동양철학인 공자의 ‘관계론’이다. 대금을 갚으라며 유통업자들에게는 물건을 외상으로 지원했다. 관계는 대대로 이어졌다. 가장 오래된 협력업체는 101년 된 멕시코의 유통회사다.

성공의 비결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금기는 가족이 100% 지분을 보유한 가족회사다. 그래서 가족 간에 불화가 생기면 사업 자체가 흔들린다. 리 명예회장은 아버지 세대와 자기 세대에서 각각 형제 간에 분쟁을 겪었다. 회사가 파산 지경까지 갔다. 그래서 2002년 리 회장은 기업의 최상위 기구로 ‘가족위원회’를 만들었다. 가족 전원이 멤버다. ‘가화만사흥’(家和萬事興)을 늘 강조한다. 가족 헌법도 제정했다.

모든 가족구성원은 대학을 나와서 다른 기업이나 기관에서 3~5년의 경험을 쌓은 후 이금기에 입사해야 한다. 이런 지혜는 동서가 따로 없다.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은 6대째 이어오는 가장 존경받는 유럽의 최대 재벌이다. 발렌베리 CEO가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부모 도움 없이 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해외유학과 해군장교로 복무해야 한다. 그런 후 다른 기업에서 상당한 업적을 쌓아야 한다.

이금기그룹에는 헌법과 별도로 ‘약법삼장’(約法三章)이 있다. 첫째, 결혼을 늦게 하지 말 것. 둘째, 이혼하지 말 것. 셋째, ‘첩’을 두면 안된다는 것이다. 약법삼장을 어기면 가족위원회 멤버자격을 박탈당한다.

한국은 어떤가. 자력으로 유학은커녕 군복무를 마쳤다는 재벌오너 후계자 소식도 듣기 힘들다. 7~8명의 재벌2세 모두 이복형제인 경우도 있다. 이래선들 북한의 김정일과 가족들의 방탕과 세습을 흉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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