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수호전을 다시 읽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전무
입력일 2018-12-30 16:00 수정일 2018-12-30 16:00 발행일 2018-12-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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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완 총괄본부장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전무

‘수호전’은 극성을 부리던 부패 관료들을 응징하고 고통받는 민중의 울분을 달래주던 양산박의 108명 영웅호걸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수호설화로 전설화되었고, 민중들 사이에 크게 찬양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송사(宋史)를 살펴보면 휘종(徽宗) 선화(宣和: 1119~1125)에 송강(宋江) 등 36명이 산동(山東)에서 반란을 일으켜 관군을 괴롭혔다는 비교적 간단한 기술이 남아있을 뿐이다. 수호전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영웅이라기보다는 동네 깡패나 범죄자 집단에 가까운 산적들이었다. 양산박의 주모자 격인 송강은 비열한 투항주의자라는 비판까지 받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수호전이 중국의 4대 기서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무슨 연유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호전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때는 북송에서 남송으로 넘어가던 시절이다. 송나라는 요(거란)와 금(여진)에 의해 시달림을 받으면서 쇠락의 길을 걷던 시기이다. 국운이 기울고 끊임없는 외침에 시달리고 있으니 민초들의 삶이 편할 리가 없었다. 또한 국가의 기강이 바로 서지 않아 부패한 관료들이 득세를 했음도 자명하다.

이런 시기에 부패한 관료들을 응징해주는 사람들이 나타났으니 그들이 비록 산적이었다고 하더라도 고달픈 민초들로서는 영웅시하기에 충분히 좋은 이야기꺼리였을 것이다. 더구나 그들 자신과 전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저잣거리 출신들이니 감정이입도 쉬웠을 것이다.

그로부터 무려 900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 2019년을 눈앞에 바라보고 있다. 그 사이 세상은 더 이상 설화도 산적도 존재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시게 발전했다. 국가 체제도 완비되고 사회 시스템도 빈틈없이 짜여졌다. 수호전에 나오는 부패한 관료들도 사라졌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 민초들의 고달픈 삶은 별로 나아진 것이 없이 여전하다. 최저임금을 받는 단기 알바나 또 그 알바에게 최저임금을 주는 자영업자 모두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노후 준비가 덜 되어서 정년퇴직 이후에도 고용시장의 문을 두드려야하는 노년이나 사회의 첫발을 실업자로 시작해야하는 청년이나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해하고 있다. 주택보유자는 집값이 올라도 양도세 때문에 걱정, 미보유자는 내 집 마련의 꿈이 멀어져 걱정. 소득은 3만달러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고 하는데 후진국형 안전사고는 끊이지 않고. 우리 사회의 어느 한 곳도 마음 편한 구석이 하나 없이 송대 말기의 그 아수라장이 재현되고 있다.

이 모든 것에 원인을 어느 하나로 단정지어서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자의 관점에서는 신자유주의를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는 세계 경제의 눈부신 발전을 가져온 혁혁한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바이지만, 동시에 경제구조적 양극화와 사회계층적 고착화라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장애요인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이런 신자유주의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가깝게는 세계에서 가장 잘 산다는 미국도 러스트 벨트의 반란으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멀리는 중동의 봄이 초래된 것도 결국 신자유주의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탄생도 어찌보면 양극화가 고착화된 경제구조, 또 계층간 이동이 사실상 단절된 사회구조를 개혁해달라는 시대정신이 투영된 결과가 아니었던가.

문재인 정부 2기 경제팀이 꾸려졌다. 기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대통령 공약을 수행하던 1기 경제팀은 경기침체와 함께 책임을 지고 퇴장했고, 새롭게 구성된 2기 팀이 2019년 경제정책 방향을 내놨다. 내용을 보면 그동안 미흡하다고 비판을 받던 기업투자 활성화와 경기 하강에 대한 대증적 방안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2019년의 경기 하강국면을 감안하면 2기 경제팀이 내놓은 2019년 경제 운용 방향은 참으로 적절한 것이다.

다만, 당초 소득주도성장의 경제철학을 꺼내들지 않을 수 없었던 시대적 요구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 아닌가 자문해봐야 한다. 최저임금제, 52시간 근무제 등이 시장적 관점에서 볼 때 이런 저런 부작용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시장적 이유나 경기 사이클 적인 이유로 경제 철학을 전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 2019년 새해가 바로 눈앞이다. 한국 경제를 이끌고 갈 2기 경제팀이 발진했다. 단기 경기 대응은 발등에 떨어진 숙제고, 그에 대한 유효적절한 대책을 내놨다. 조만간 당초의 경제철학을 구현하여 양극화와 구조화의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정책대안도 새롭게 선보이기를 기대한다. 아무쪼록 단기적인 경기 대응도 잘하고 장기적으로도 이상적인 경제사회구조를 구현하는 새로운 경제팀이 되기를 바란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