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노동가치설의 재발견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전무
입력일 2018-11-25 14:36 수정일 2018-11-25 14:37 발행일 2018-11-2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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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완 총괄본부장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전무

필자는 지난 몇 개월간 고향 농가주택을 리모델링하는 데 흠뻑 빠져 있다. 거의 모든 주말을 고향집에서 보내다시피 한다. 정말로 해도 해도 끝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하나씩 내 손으로 직접 새롭게 모양을 만들어간다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기, 화장실, 주방 등은 내 실력으로 도저히 안 되는 부분이라 전문 인테리어 업자를 불러 시공했지만 그 외에는 모두 내 몫이다. 페인트 가게에 가서 색을 고르고 꼬박 하루종일 롤러를 밀었다. 외벽은 흰색으로 실외 카페 방은 민트색으로. 중고품 가게를 뒤져서 중고 가마솥을 샀다. 그라인더와 철수세미로 녹을 갈아내는데 또 꼬박 하루. 그렇게 가마솥을 아궁이에 앉혔다.

평생 책상물림이 일 머리도 없거니와 각종 연장도 새로운 것뿐이라 쓸데없이 반복 작업을 하면서 하나하나 새롭게 배운다. 그러면서 가장 실감나게 체험한 것은 역시 노동의 신성함과 가치이다. 무엇인가를 새롭게 만들어 낸다는 것은 그만큼의 노동이 투입되어야만 한다. 엔진톱을 들고 반나절은 나무를 해야 하루의 땔감과 모닥불용 나무가 만들어진다. 그런 노동 끝에 새롭게 바뀐 집을 보면 도대체 이 집의 가치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를 되묻게 된다. 피워놓은 모닥불 앞에서 한순간이면 스러질 이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고된 노동이 필요했는지 되새겨본다.

과연 진정한 노동의 가치는 어떻게 가격이 매겨져야 할까? 고전학파에서부터 마르크스까지 노동의 가치를 평가하는 이론은 무수히 다양하게 발표되었다. 그중에 커다란 두 줄기는 주관가치설인 효용가치설과 객관가치설인 노동가치설이다. 효용가치설은 노동의 결과로 나온 산출물이 가져다 주는 효용의 크기에 따라 가치가 매겨진다는 것이다. 결국 시장의 수요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원가가 투입되었다 해도 쓸데없는 물건이면 값을 받지 못한다. 반대로 노동가치설은 상품의 가격은 투입된 노동의 가치만큼 매겨져야 한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는 다양한 노동 관련 정책들을 내세웠다. 최저임금제, 52시간 근무제, 광주형 일자리 등 굵직굵직한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모두 노동 그 자체에 가치기반을 두는 정책들이다. 빈부격차나 양극화가 심하게 진행된 경제구조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시도이다. 사실 지난 40여 년간 세계 경제체제를 뒷받침해온 신자유주의는 그간의 경제발전이라는 업적에도 불구하고 양극화를 심화시켜왔다는 시장실패로 비판을 받아왔다. 세계에서 제일 잘 산다는 미국에서조차 지난번 대선에서 러스트 벨트가 반란을 일으킨 것도 결국 신자유주의의 시장실패에 기인한다.

문재인 정부의 시도들이 시장경제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로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양한 정책들을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비록 그 결과가 실패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한 번쯤 추진해봐야 한다. 성공하지 못하면 실패를 교훈 삼아 새로운 정책을 또 만들어 볼 수 있다. 다만 그 와중에 나타나는 여러 부작용을 감안해 정책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보완대책도 만들어야 한다. 특히 광주형 일자리는 이해관계가 다른 다양한 집단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이다. 이해를 서로 맞춰주기 위해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 그리고 그에 걸 맞는 진정한 가치를 찾아줘야 한다. 그래야만 땔감도 구하고 모닥불도 피울 수 있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