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신성일, 맨발의 훈장, 별들의 훈장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18-11-07 15:56 수정일 2018-11-07 15:57 발행일 2018-11-0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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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맨발의 청춘’ ‘별들의 고향’ ‘겨울여자’….

대한민국 영화계 반세기를 대표하는 국민배우 신성일이 향년 81세로 세상을 떠났다. 큰 별을 잃고 비통에 잠긴 영화계는 정부에 훈장 추서를 건의했으며 빈소를 방문한 문화체육관광부 나종민 차관도 예우하는 방법을 찾겠다고 화답했다. 여느 문화예술계 원로처럼 문화훈장이 수여될 것이다. 우리나라 문화훈장의 현황을 돌이켜 보면 대중문화 연예인에 대한 홀대가 왠지 아쉽다.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 주인공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고 강신성일은 단순히 1960~70년대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반짝 스타가 아니다. ‘신성일’이라는 이름 세 글자 없이는 대한민국 영화산업 전체, 더 나아가 대중문화예술계를 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존재감을 발휘했던 인물이다. 1960년 당대 최고 감독인 고 신상옥의 부름을 받아 영화계에 데뷔한 신성일은 고 유현목 감독의 1962년 작품 ‘아낌없이 주련다’를 비롯해 1964년 ‘미망인’, 엄앵란과 부부의 연을 맺었던 대표작 ‘맨발의 청춘’으로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섰다. 1967년 한해에만도 신성일 주연의 영화가 무려 51편이나 상영돼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의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생애를 통틀어서 5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1979년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역임한 신성일은 배우, 감독, 영화 행정가를 넘어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정치인생을 시작하기도 했다.

전례를 살펴볼 때 조만간 추서 절차를 거쳐서 그에게 수여될 문화훈장은 2~3급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 문화, 예술발전에 공을 세운 자에게 수여하는 문화훈장은 문학인, 음악인, 미술인, 무용인 뿐 아니라 탤런트나 영화배우 등의 배우 및 가수 내지 코미디언 등의 연예인, 만화가 등도 그 대상이다. 다른 분야의 훈장처럼 등급이 존재하며 1등급 금관부터 은관, 보관, 옥관, 화관까지 있다. 최근 빌보드 차트를 석권한 방탄소년단도 국위선양에 대한 혁혁한 공을 인정받아 5급인 화관훈장을 수여받았다.

그동안 대중문화예술인에게도 훈장들이 수여됐지만 대부분 4, 5급 문화훈장에 그쳤다. 1급인 금관문화훈장 수여자 명단을 살펴보면 학교 교과서에서 이름을 볼 수 있는 문학인, 미술인, 클래식 음악인, 언론인이 대부분이다. 대중문화계 종사자의 이름은 찾아보기 어렵다. 고 신상옥·유현목 감독과 임권택 감독을 비롯해 앙드레김, 이영희 패션디자이너 등이 1급 금관을 수여받았을 뿐이다. 2급 문화훈장에서는 그 사정이 그나마 나아진다. 대중음악계에서는 이미자를 비롯해 하춘화, 패티김, 최근에는 SM엔터테인먼트 대표 이수만에게 은관문화훈장이 수여됐다. 영화계에서는 신영균, 윤일봉, 손숙, 윤여정, 이덕화 등의 배우가 수상한 바 있다.

등급에만 연연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1, 2급 훈장이 순수예술계에 지나치게 편중된 상황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팝뮤지션 폴 맥카트니, 엘튼 존에게 영국왕실의 기사(Knight) 작위가 주어지고 1980년대 미국의 대통령 레이건을 비롯한 많은 예술인들에게 문화계를 초월한 훈장 등의 적절한 예우가 제도적으로 정착돼 있는 사례는 문화국가를 표방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을 보훈제도가 앞장서 반영해야 한다. ‘맨발의 청춘’을 보낸 예술인이라면 분야를 막론하고 ‘별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